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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에 방문한 우래옥

한여름의 냉면집은 가능하면 피하는 편인데... 또 너무 생각이 나서 방문

 

(여름엔 극성수기여서 냉면집 간도 잘 안 맞고, 시장통같은 데서 밥 먹어야 해서 힘들다.)

 

 

대기합니다.

1층에서 대기하다가 번호가 불리면 지하로 고고

 

 

 

진한 육수, 육고기 감칠맛의 정점인 우래옥.

이 맛을 싫어하는 평양냉면 팬들도 있다.

우래옥 육수 맛은 간장+소 감칠맛이다.

 

심심한 맛은 없다.

 

너무 달여진 듯 진하다.

 

 

 

이 육수가 온수였다면 갈비탕같을 맛이다.

개인적으로는 판교 능라가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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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뱅뱅사거리의 차이나 팩토리를 두번 갔었는데 그 특유의 시스템 때문에 좀 불만이었다. 인당 2~3만워에 메뉴를 몇 개 선택해서먹는 시스템인데 맛이 좀 오락가락했다. 레토르트 데워 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판교 아비뉴프랑에 입점한 차이나 팩토리는 단품 요리 위주로 주문하면 된다. 거기에다 딘타이펑 스타일의 육즙 흐르는 만두도 있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육즙 만두를 두 판 주문. 딘 타이펑 만두의 69% 정도 재현한 맛이다.
저렴한 가격에 만족.

그 다음으로 주문한 건 유린기.
바삭한 고기에 간장 드레싱. 새콤한 산미가 좋았다.
그리고 이 집 짬뽕밥이 맛있다.
못 먹을 수준의 매운 맛은 아니고 얼큰 칼칼하다.

다른 차이나 팩토리도 판교 매장처럼 운영 방식을 바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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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요리 잡지와 기사에 엄청나게 노출되기 시작한 소바 전문 식당 미나미.
개업한다고 공사하는 것부터 봐서인지 유달리 정이 가는 곳이다.

오사카 요리 학교 츠지전문요리학교 동문들이 함께 하는 곳이란다. 메밀도 일본에서 공수하고...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바는 그럭저럭 좋은 정도고, 면은 끝내주게 좋다. 면만..
주방과 홀이 오픈되어 있어 냄새를 먹는 기분이라 맛을 잘 느끼지 못했다.



달걀말이는 너무나 달아서 남겼다. 또 달걀말이가 지나치게 두꺼워서 달걀 냄새가 나서 거북했다.

그리고... 저 위의 마른 생선 구이 때문에 이 식당에 대한 신뢰를 거두게 되었는데,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생각 보다 음식 맛과 식당 환경이 좋지 않자 우리는 생선구이를 주문해 보기로 했다.
그 식당의 질이 어떤지 바로 알 수 았는 요리가 생선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그래서 생물 생선 구이 부탁한다고 하자 나온 음식이 저 마른 생선 구이.
허허허 하며 웃으면서 헤프닝으로 여겼지만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100% 일본 산 메밀 국수" & "츠지 요리학교"라는 마케팅 키워드로 자리 잡은 식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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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산 탕진의 주범은 바로 양고기다. 양꼬치를 즐겨 먹기는 했지만 양갈비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호주에서 양갈비 바베큐를 먹었을 때 내 귀에는 "할렐루야"가 들렸으니...
그러던 찰나...
코스트코에서 양갈비를 팔기 시작한다!!



소고기 끝 코너에 판다. 대구점에도 팔길래 부모님께도 해드렸다.
양재점에 금요일에 가면 양갈비 매진될 때도 있다. (이 때의 허탈함이란...)

사서 실온에 한~두 시간 놔둔 후 굽는데 이 이유는 고기 냉기 때문이다. 실온과 거의 같을 때 구워 먹는 게 맛잇다.
냉기가 가시기만을 기다릴 뿐 이때 고기에 어떤 것도 미리 뿌려두지 않는다.

팬에 굽기 전 소금, 후추, 큐민을 뿌린 후 키친타올로 꾹꾹 누른다.


팬에는 버터 한큰술 넣고 고기를 익힌다.
우리는 미디움 웰던을 좋아해서 그렇게 익혀 먹는다.

한 팩을 사면 둘이 한 끼로 해치운다;;;;;


코스트코에 ipa 맥주가 들어 와서 같이 마셔 주면 일주일간의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다.

특별한 간이나 처리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다들 시도해 봤음 좋겠다.
이렇게 양고기에 흠뻑 빠져서 올해는 다른 고기는 거의 안 먹은 것 같다.

참! 큐민은 가능하면 꼭 구입해서 살짝 뿌려 먹었으면 한다. 양고기의 맛을 티코에서 벤츠로 격상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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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코스트코 반조리 식품을 신뢰하고 구입한다. 새우 샐러드도 많이 사 먹었다.
불고기는 워낙 유명하고 실속 있어서 구입한 뒤 세 개로 소분해 둔다. 다싯물에 이 불고기와 양파만 듬뿍 넣어도 맛있는 불고기 전골이 된다. 여기에 버섯 넣으면 버섯 불고기 전골.
구리고 LA 갈비는 오븐에 구워 많이 먹는데 소기름이 많아 요즘은 자제 중. 놀러갈 때 바베큐로 딱이다.
광어&연어 회나 모듬 초밥도 돈값 확실히 하는 효자들이다.

이번에 새 식품이 나왔길래 구입했다.
아히요&누들이란다.

파스타 면이 얇아 느끼하지도 않고 마늘 올리브 국수같다.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있다. (역시 먹을 거에 넉넉한 코스트코)
소세지가 있어 같이 볶아 먹었다.

두 명이 배부르게 먹는 양이다.

입맛에 맞아 무지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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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신세계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 갈 때마다 보이는 긴 줄

바로 몽슈슈 코너다.

줄이 길어 늘 포기하다가 기회가 생겨 드디어 맛 보게 되었다.

 

외관은 어릴 적 보던 그런 생크림 롤케이크.

 

과하지도 않고 부실하지도 않아서 단정한 게 마음에 쏙 들었다.

 

 

 

트레이드 마크가 새겨져 있고.

 

생크림이 참 많다는 생각.

 

 

 

 

느끼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맛있더라.

맛있는 우유에 설탕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는 느낌.

 

부드러운 것은 둘째치고 소위 말하는 '간'이 완벽하다.

 

줄 서서 먹을만 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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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 맥주에 완전 빠져 있던 터라 데블스 도어가 오픈한다는 소식에 정말 기뻤다.

평일 낮에 시간이 생겨 방문

 

거대한 양조장 콘셉트의 맥주집.

 

 

 

 

기본적인 접시와 물수건 등은 셀프바에서 직접 서빙

 

 

 

 

재미난 풍경이다

 

 

 

맥주 맛은 그리 놀랍진 않았고, 또 나쁘지도 않은 정도.

에일 맥주 대중화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주(?) 종류가 좀 부실

맛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도.

 

개인적으로는 두 번 방문할 정도의 매력은 없었다.

 

판교 더 탭 하우스는 여러 번 방문해도 좋은데 이곳은 엣지(?)는 없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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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사극 '정도전'을 정말 뜨겁게 보았다.

그리고 현재 방송 중인 '육룡이 나르샤'도 즐겁게 보고 있다.

정도전이 '정도전'에 주목한 이야기라면, 육룡이 나르샤는 '이방원'에 주목한 이야기인 것 같다.

 

나에게 늘 긍지와 자부심을 주는 '조선'은 어떻게 기획되고 탄생했을까.

기회만 된다면 조선의 정치, 철학, 예술에 대한 많은 글을 쓰고 싶다.

(조선 후기는 그리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

 

요즘 정치를 보다보니...

정도전이 개혁을 이루어 나간, 그 과정을 야당 정치인들이 되새겨 보면 좋을 것 같다.

(여당엔 기대 하지 않음. 왜곡만 하지 않아도 감사 감사 대감사..)

 

 

 

들어가며

 

정도전은 군주로 대변되는 한 사람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은 올바른 시스템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가 기획한 조선은 재상과 관료가 중심이 되어 국가의 질서가 유지되는 나라였다. 국가의 체계를 세우면, 세습으로 유지되던 절대 권력이 이러한 체계 속으로 편입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절대 권력을 지닌 한 사람이 아닌, 사회 질서 시스템이 갖춰지면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대응 과정을 예측해볼 수 있기 때문에 정도전의 이러한 기획은 근대 사회로의 기획이었다.

이처럼 조선왕조의 건설을 위해 정도전은 국가수준의 군사훈련의 병법과 중앙집권적 관료제도를 정비하였는데, 군사력과 관료제가 근대 국가의 필수 조건이라는 학계의 정설을 떠올려 본다면 정도전이 국제적으로도, 또 국내적으로도 시대의 요청과 상황을 잘 헤아린 것을 알 수 있다.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바꿀 정도의 국가를 설계, 건설하였다는 점은 정도전의 식견과 통찰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말해 준다. 그리고 시스템을 설계한 뒤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은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고 생각된다.

정도전이 어떻게 이러한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다 따져보는 것은 한계가 있고, 다만 사료 상의 문언들을 중심으로 그 빈 공간들을 추론해서 채워볼 뿐이다.

 

 

고려의 현실을 체험하다

 

 

두 가지 개혁

 

정도전이 바라본 고려 말의 정치상황은 한마디로 위기 상황이었다. ‘위기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 경제의 파탄, 도덕의 부패, 힘의 균형의 파괴가 모두 나타난 상황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도전이 문제로 삼은 것은 정치경제의 위기였다. 그래서 먼저,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시스템을 혁신하고자 하였고,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토지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정도전이 구상한 정치 시스템 개혁의 내용은 사유화된 권력을 막기 위해, 안정적인 정권과 공동체 질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왕 혼자서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기에 교육받은 전문 선비들이 역할별로 실무를 하고, 재상은 이를 관장하는 재상 정치가 그것이다. 권력을 한 사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분산시켜 시스템이 정치를 제어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훗날 정조 초기에 세도정치가 판치는 것을 보고 정약용이 관료 중심의 집단 정치체제를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음으로 정도전이 구상한 경제 개혁의 내용은 토지를 공전제로 개혁하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생업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생업인 농업을 하기에 권문세가가 전국의 토지를 소유하여 백성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는 현실이 고려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공전제로 전제 개혁을 하고자 한 것이었다.

 

 

정치가 정도전

 

이러한 개혁은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탁월하고 구체적인 기획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권과 권문세가 모두를 설득시켜야 이러한 개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가 시스템을 개혁하고 정비하고 개선하는 것인데, 온 나라 사람이 힘을 모아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정도전과 뜻을 모은 몇 몇 무리로는 이 기획을 시작하기도 어려웠다. 현재에도 개혁이 이루어지기 어려운데, 당시 정도전은 세력도 하나 없는 변변치 않은 집안의 선비일 뿐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이 선택한 전략이 척불, 배불주의였다.

 

1388년 그의 나이 46, 우왕 14년에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중앙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정도전은 조준 등과 함께 과전법 개혁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전략으로서의 배불론

 

사대부의 명분을 세워주고, 권문세가에 경제적 이익을 어필하다

 

당시 정계의 주류 세력인 사대부들이 성리학자들이어서 정도전은 이들을 포섭하기 위한 명분으로 성리학은 정통이고 불교는 이단이라는 전략을 쓴다. 당시 사대부들은 이념적으로는 성리학을 추종하였지만 현실이나 삶에서는 불교를 숭상하였다. 이색만 하더라도 집에 극락세계를 기원하며 불경을 외우는 백련회를 설치할 정도로 불교와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배불론을 전개하면서도 정도전이 불교에 대해 주로 비판한 부분은 윤리적인 측면이었다. 이를 테면 불교는 아버지를 섬기는 도리가 없고 임금을 섬기는 도리가 없다고 한 것이었다. 이런 전략으로 사대부라면 성리학적 사상을 따라야 하고 불교를 배척해야 한다는 명분을 세운 것이었다. 배불이라는 사상으로 사대부의 결속을 다진 것이다.

그리고 권문세가들의 지지를 받고자 불교로 인해 세금이 적게 걷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불교로 인해 젊은 남성이 역을 감당하지 않고 산 속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국가의 노동력이 약해졌다는 것이었다. , 불교를 없애면 많은 사람들이 노역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세금이 더 많이 걷혀 권문세가에 이익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전략이 권문세가들이 정도전의 배불사상에 동의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정도전이 불교를 부정적으로 취급한 것은 단순히 그가 성리학이라는 정통 사상을 순수하게 추구하여서라기보다는 배불론을 혁명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 그가 성리철학자였기 때문에 진보적 사회개혁 사상가가 되고 배불주의자가 되었다기보다는, 반대로 진보적 사회개혁 사상가였기 때문에 성리학자가 되었고 열렬한 배불주의자가 되었던 것이다.(한영우, 정도전사상의 연구, 서울: 한국문화연구소, 1973/증보판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이렇게 정도전이 고려말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불교 배척을 화두로 삼아 당시 정쟁의 중요한 문제로 만든 것은 그의 정치적 능력이 출중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로 인해 정도전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동시에 또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신돈과 같은 불교계의 위협 세력의 성장을 예방하는 두 가지 실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조준을 전면 등장시키다

 

회군 이후 정도전은 배불론이라는 명분으로 사대부와 권문세가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다방면에 걸친 개혁에 착수한다. 회군 직후 13887월 조준의 상서를 발단으로, 8월에 전국에 걸친 양전 사업, 2개월 후에는 급전도감이 설치되고, 1389년에 양전이 완료, 1390년 정월에 신전적이 반포, 13915월 과전법 제정으로 전제개혁이 일단락되었다.

민수를 헤아려 토지를 지급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전제개혁을 주도한 것이다. 과전법은 정도전이 최선의 모델로 삼았던 고대 중국의 공전제를 실현한 것은 아니었지만 온 나라가 기뻐하고 민심이 좋아졌다고 한다. 이 추진 과정에서 이색, 권근, 정몽주와는 끝내 갈라서게 된다. 위화도회군 이후에는 스승인 이색을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개혁의 전면에는 조준이 등장하는데 이는 정도전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도전은 1375년 그의 나이 33세에 이인임의 친원 정책에 반대하다가 나주 회진현의 거평 부곡에 약 3년간 유배되고, 중앙으로 복직되지 못하고 이후 4년간 고향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이후 바로 동북면의 이성계를 찾아가 이후, 이성계를 위해 헌신하며 위화도 회군을 일으키게 된다.) 정도전은 이인임에 도전하여 유배를 당한 후 고초를 겪고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토지개혁은 조준 대 이색의 대결로 보이게 하고,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정도전에게 전제개혁은 단순히 토지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말 토지제도하의 정치권력 자체를 혁파하고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이었다. 이토록 중요한 토지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 매우 예민하고 기민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정몽주의 반대로 전제개혁이 성사되지 못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전제개혁은 성사되지 않았다. 과전법을 실시해 전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이성계파(조준, 윤소종, 정도전)와 이 개혁을 반대하는 정몽주파(이림, 우현보, 변안열, 권근, 유백유, 이색)가 정치적으로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개혁파들 대개가 유배를 가고 말았던 것이다.

, 토지개혁이 정몽주파에 의해 성사되지 못하자 정도전이 비로소 정도전은 정쟁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하지만 곧 정도전은 탄핵의 표적이 되어 좌천되어 유배를 가게 되었다. (!)

정도전이 중앙정계에서 밀려난 후, 조정의 주도권은 정몽주와 이색, 그리고 이성계가 병존하는 연립정권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립정권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이성계의 군사력을 염려한 정몽주가 13924월에 이성계파의 주요 인물들(조준, 정도전, 남은, 윤소종, 조박, 오사충 등)을 유배시켜 버린 것이다.

비개혁파들은 정도전의 신분이 낮고, 가풍이 문란하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인신공격의 형태를 띠는 소를 올렸고, 이 결과로 개혁파였던 조준, 남은, 남재, 조박, 윤소종은 귀양을 갔다. 당시 정도전은 이미 봉화에 유배 중이었는데 이런 상소들로 인해 예천의 감옥에 까지 가서 투옥된다. 이때 정몽주는 정도전의 외가 혈통, 즉 정도전의 외할머니가 노비이므로 정도전을 벌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정몽주(鄭夢周)가 간관(諫官) 김진양(金震陽) 이확(李擴) 이내(李來) 이감(李敢) 권홍(權弘) 유기(柳沂) 등을 사주하여 상소하기를,

“정도전은 천지에서 몸을 일으켜 당사(堂司)의 지위를 도적질하고, 천한 근본을 가리고자 하여 본주(本主)를 제거하려고 하는데, 혼자 할 수 없으므로 참소로 죄를 얽어 만들어 많은 사람을 연좌하였으니, 청컨대 귀양 간 곳에서 처벌하여 후세에 경계가 되게 하소서.” 라고 하였다.]

 

 

고려왕조의 중흥을 포기하고 혁명의 실행에 들어가다

 

1388년 그의 나이 46세에 위화도 회군을 기획하고, 과전법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3년 뒤에 경북 봉화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런데 1년 뒤, 유배 중에 투옥까지 된다. 이 시기에 정도전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자신의 뜻이 같은 사대부였던 정몽주파에 의해 좌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배 중임에도 옥에 갇히기까지 한 정도전은 이때 고려는 단순히 개혁으로 바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굳게 결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고려왕조의 전면 부정, 곧 새로운 나라를 건국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닐까 한다.

이후 행보는 모두가 알다시피, 변방의 무장 이성계와 정치 낭인인 정도전이 만나 혁명은 변경으로부터라는 말을 실감시키듯 혁명을 이룩하게 된다.

, 그가 옥에 갇힌 해에 정몽주가 피살되어 정도전은 풀려나고 이 해 7월에 이성계를 신왕조의 왕으로 추대한 것이다. 이로써 475년에 이른 고려왕조는 종언을 고하고 조선이 건국된 것이다.

 

 

대항엘리트, 백성을 위한 엘리트, 정도전

 

전략으로서 배불론을 주장한 것 외에도, 거침없고 타협없는 개혁 의지는 단순히 정도전이 성리학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정도전을 성리학자로 보기보다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정치가이고 관료라고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이에 대해 김석근은 그는 전형적인 성리학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타고난 반항아이자 동시에 혁명아이며,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모티브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였다.

 

정도전이 이토록 급진적인 개혁을 주도할 수 있었던 동력은 출신이라고 보이기도 한다. 그의 가계에는 천민의 피가 섞여 있었다. 정도전의 외할머니는 승려 김진이 우씨 가문의 종의 아내를 간통하여 낳은 딸이었다. 이 때문에 정도전은 과거 합격 뒤에도 한동안 임명장을 받지 못하였다. 또 우왕 원년에 유배되었던 다른 개혁파들과 달리 정도전은 10년 동안 복직되지 못하였다. 한영우 역시 이 점을 중시하고 있다. 그는 정도전이 평생 해결하지 못하고, 죽어서도 풀리지 않은 것은 혈통문제였다. 이 점은 그의 사회개혁의 방향이나 인격의 형성, 나아가서는 동료 사대부와 결별하여 학자에서 혁명가로 전환하는 이유 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정도전은 고려왕조 하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보았고, 이것이 그로 하여금 혁명을 꿈꾸는 대항엘리트로 변하게 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하나는 백성의 발견이다.

정도전은 유배지인 나주 소재동에서 천민들이 매우 유식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성길이란 자는 약간 글자를 알았고, 그 아우 김천은 담소를 잘했으며, 서안길은 사투리, 속담, 여항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고 남기고 있다. 그리고 정도전이 본 부곡민들은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고, 또 정도전을 성심으로 위로해주었다.

이에 정도전은 마음 깊이 감동하여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체험은 성리학자로서의 정도전이 가진 학문적, 정치적 태도에 근본적인 전환을 초래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과 지배엘리트들이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백성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배움을 받는 이것이 정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이며 정치가들이 존재하는 이유임을 자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도전은

민의 마음을 얻으면 민은 복종하지만, 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민은 임금을 버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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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해 먹은 것들이다.

 

 

 

불고기감 사서 양파즙에 재웠다가 간장 간을 살짝 해서 먹는 불고기 버섯 전골.

버섯 밑에 깔고, 쑥갓을 듬북 올려준 뒤, 고기를 넣어 익히기만 하면 된다.

 

 

 

버섯은 종류별로 살 필요는 없고, 모둠 버섯을 사거나 아니면 생표고만 있어도 좋다.

양송이는 버섯 전골에는 안 어울리니 일부러 넣진 말 것.

 

쑥갓은 많다 싶을 정도로 듬뿍 넣어야 좋다.

 

 

 

 

고기만 올려 먹으면 된다.

육수는 멸치다시 육수다.

 

 

 

 

떡을 아무도 안 좋아해서, 우리집은 양배추 반 통을 넣고 오뎅 듬뿍 넣고 라볶기를 먹는다.

양배추 건져 먹는 맛으로 먹는달까.

이것도 별미로 한번 해먹었다.

 

 

 

 

 

 

 

 

묵사발 혹은 묵밥

 

다시 국물에 메밀묵을 넣고 고명 올려 먹으면 별미다.

 

많이 먹어도 건강식이라 몸에 해롭지도 않고.

 

 

 

 

이건 도토리묵

 

숟가락으로 묵을 딱딱 잘라가며 국물과 흡입!!

 

 

 

아 침 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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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산물을 구매해 볼 요량으로 다음 카페를 하나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공동구매를 한다고 해서 믿고 산 김태완 명란젓

우리가 익히 아는 명란젓의 빨간 색은 인위적인 색소를 넣어 가공한 것이라 찝찝했는데, 김태완 명란젓은 그렇지 않아서 구입해 보고 싶었었다.

실제로도 정말 맛있었다.

그간 먹었던 명란젓은 짜기만 한 맛이었는데, 이 명란젓은 명란 특유의 풍미와 맛이 살아 있어서 좋았다.

어릴 적 먹던 그런 맛이었다.

 

500g에 36,000원을 줬던 것 같다.

입금을 하고 나니 다음 날 왔다.

 

 

박스도 좋았다.

선물용으로 부모님들께도 보낼 것을 하고 후회했다.

 

 

 

 

저온 장기간 숙성에, 배에서 잡자 마자 냉동을 했다나... 뭐 암튼 좋았다.

 

 

 

오오오

 

알이 정말 싱싱

 

 

 

 좋다...

 

그냥 먹으면 당연히 짠데도, 맛있었다.

밥 한 숟가락 위에 얹어 먹으니까 최고였다.

 

 

 

 

달걀말이에도 넣고, 달걀국에 살짝 올려(마지막에 명란젓 넣고 불을 바로 꺼야 함) 먹었다.

 

명란젓은 여기 것을 구매해서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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