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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빚어서 냉동고에 넣어둔 고기만두가 너무 많아서 김치장떡을 부쳤다.
만두 몇 개를 꺼내 만두피를 벗기고 나온 만두속에 김치와 고추를 넣어서 부침.


어떤 날 저녁엔 괜히 야식이 당겨서 크래미와 치즈봉.
한 며칠 크래미가 어찌나 먹고 싶던지 사나흘은 사 먹은 것 같다.


해장 콩나물?
그냥 가장 간편한 국 중에 하나라서 해먹은 콩나물국.
멸치다시물에 콩나물 넣고 10분 냄비 두껑 연 채로 끓이면 끝. 소금간, 파 좀 넣고, 마늘 다진 것 좀 넣고.


총각김치가 한 통이 있어서 해 먹은 총각김치찜.
총각김치소를 털어내고 물을 붓고 푹 끓이면 끝. 대신 30분은 끓여서 무가 물러지도록 해야한다.
젓가락을 넣었을 때 쑤욱 들어갈 정도로 물러지면 ok.
물을 좀 넉넉히 붓고 새우젓으로 간을 해도 되고, 그냥 자작하게 붓고 끓여 먹어도 굳굳!
저 시원한 맛은... 정말 최고다! 국수를 말아서 먹어도 좋더라.


참치김치찌개.
꽁치김치찌개를 먹고 며칠 지난 후 참치김치찌개.
김치를 참기름 한 스푼 두른 냄비에 볶다가 물을 붓고 한 번 끓으면, 참치나 꽁치 통조림 넣고
김치가 잘 익을 때까지 끓이면 된다.
된장찌개는 후루룩해서 끓으면 금방 끄고 먹는 찌개인 반면, 김치찌개는 10~15분은 끓여야 맛있다.


남자친구가 전도한 달래간장.
사진에는 몹시 흉측하게 나온 것 같아 서운하지만 캐비어처럼 세련되게 찍히면 달래간장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달래를 쫑쫑 썰어 넣고, 들(참)기름, 식초 조금, 양조간장(맛간장), 고추가루도 슬슬 뿌려도 되고.
(자세한 제조방법은 절대 알려주지 않고 있지만 등 뒤로 주워 본 바에 의하면 대략 위의 레서피와 같다.)

살짝 구운 조선김에 따듯한 밥을 한 숟가락 얹고, 거기에 얘를 올려주면
세상에서 제일 푸근하고 다정한 집밥이 된다.
속이 허하고 괜히 눈물이 날 때는 이 달래간장을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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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살라(uppsala)는 꼭 한 번 가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번번히 스톡홀롬을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여행이 무산된 도시이다.
스톡홀롬에서 기차나 버스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인구 13만 명 정도의
적당히 활기차고, 적당히 조용한 대학도시이다.
웁살라 대학은 북유럽 최초의 대학일 뿐만 아니라 (1477년에 설립되었으니)
실력이나 학문적 성과 면에서도 유명한 종합대학이다.
서유럽이나 미국도 그렇지만 종합대학들이 유명 도시에서 조금 떨어져 따로 위성도시를 이루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웁살라도 스톡홀롬의 산업-대학 위성 도시인 셈이다.
스웨덴의 남쪽에 제 3의 도시인 말뇌는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매우 가까워서 발전한 도시인데
말뫼 역시 근처에 룬드(lund)라는 대학도시가 있다. 물론 그 대학의 이름은 룬드 대학교!



모처럼 스톡홀롬에 들렀을 때, 밤을 꼬박 새고 간 터라 아침 동이 터 오자 잠이 쏟아졌었다.
커피를 자양강장제삼아서 벼르던 웁살라행 버스를 탔다. (기차던가... :-)
내가 있던 욘쇼핑도 10만 정도의 인구가 사는 도시이고, 경영전문 대학과 중소기업이 밀집된 도시였고
웁살라 역시 웁살라 대학 중심의 벤처의 중심-요람인 곳이었지만
웁살라는 조금 더 전통적인 스웨덴의 모습을 풍겼다.
스웨덴은 점점 더 북쪽으로 갈수록 이주인구가 없고 뭐랄까... 거대한 백인들의 차가움과 활달함이 있달까.
더 정돈된 모습도 느껴졌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따라 자전거가 즐비한 모습은 여느 스웨덴의 도시와 같다.
지금 이 사진을 보며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저 때도 나는 꽤 두터운 옷을 입고 있었지만 봄이 오는 풍경,
해가 길어지고 (사정없이 길어져서 여름이면 백야의 밤도 찾아오지만) 햇살이 따듯하다.
서울의 봄처럼, 햇볕이 쬐는 곳에 있으면 따듯하고 응달에 들어가면 으슬으슬 추워지는 것도 비슷했다.

웁살라 대학 안으로 들어가도, 대학 캠퍼스가 담장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관공서도 있고 또 다른 골목 끝으로는 연구소도 나오고, 거대한 웁살라 성당도 있고.
이 즈음 되선 난 정말 너무 졸려서 좀비처럼 걷다시피했는데, 결국 이 사진이 보이는 계단에 앉아 졸았다.
이 동네에 살면서 편했던 것은,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옷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옷에 피를 뭍히고 다닌다면 경찰이 출동했겠지만,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옷이 있으면 헤지다 못해 빵꾸가 날 때까지 입곤했던 나로서는 뭐랄까... 해방감까지 느껴졌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곳을 찾아 나오니 도심으로 가는 한 골목이 나온다.
옷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스웨덴 사람들은 굉장히 패셔너블하다.
아마 패션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백인(?)들은 미국 사람들 뿐인 것 같다. :-)
영국 사람들의 빈티지와 특유의 패션은 지금도 동경하는 것이고, 파리도 의외로 수수한 멋이 있고,
특히 밀라노! 오... 전세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들은 단연코 밀라노 사람들이다.
이탈리아사람들은 유전자에 '스타일'이란 DNA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어쨋거나, 우스개말로 유럽인들이 서로 서로를 놀리는 농담 중에
"이탈리아인이 기획을 하고, 독일인들이 디자인을 하고, 영국 사람들이 주방을 맡는 일은 최악이야"와 같은 게 있다.
그것처럼 이 사람들은 스웨덴 남자들은 다 게이야 (쑥덕쑥덕) 라고 할 정도로,
스웨덴 사람들은 굉장히 패션에 민감하다.


이제 도로변으로 나왔나보다. 어딜가나 깨끗하고 참 분주하다.
난 처음에...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살까" 싶고, 시간이 많아서 불안하기까지했는데
어느 날 부턴 한국에서와 똑같이 시간관리에 쫓기게 되더라.
뚝딱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문화가 아니니, 저녁을 한 번 친구들과 먹으려면 다 요리를 해야하는 것도 그렇고.
이 사람들만의 법에 따라 생활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사람들의 24시간은 공평하구나..싶었다.


쇼핑거리였는데, 서점도 보이고... 길을 따라 양 옆으로 가구점도 있고 문구점도 있고...
편집매장도 있어서 옷도 보고.. 유럽에서 가장 맛이 없다는 스웨덴 커피도 있고.
평일 오후라 옷집들이 한가해서 구석구석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6만원 정도에 구입한 겨울 코트를 아직도 입고 있는데 생활물가는 정말 안정되고 쌌다는 생각이 난다.
북유럽?! 하면 굉장히 비싼 물가부터 생각하는데 그건 아마 관광객들의 체험 물가가 아닌가 싶다.
당연히 관광객들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니, 혜택을 못 받는 것이다.
하지만 식료품, 옷, 신발, 교통비 그리고 대학까지의 공교육과 의료 시설도 모두 정부에서 제공하던
기본 생존권에 대한 생활비는 한국과 비교하면 천국이었다.
하다못해 EU에 늦게 가입한 스페인은 여행객들에게조차 의료보험을 보장해 주는 정도이니.


이건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가던 길에 본 건물인데, 예전 건물을 개-보수해서 쓰는 저 튼튼함에 부러워지곤했다.


웁살라에 도착해서 역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분수와 거리의 풍경.
조용하고 차분한 도시다.
어떻게 보면 여행객, 특히 좀비처럼 졸린눈을 하고 어슬렁 거리는 나와같은 사람에겐 관심도 없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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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우리는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그리고 조선시대에 대한 것은 학교에서건 매스 미디어에서건 많이 접한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시대 이후 부터의 근-현대사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근대는 사료나 책으로부터가 아니라,
<장소>로 부터 경험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런 '근대건축' 때문이다.

지금은 허물어져 언제 다시 복원될지 모르는 구 조선은행.


 

좌측의 흰기둥이 서 있는 곳이 백년광장.

영화 모던보이에서 식당 뒤로 보이는 가로등이 있는 광장이 백년광장을 모티브로 삼은 이미지.




당시의 구 조선은행 건물과 거리의 모습들.

나이트크럽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전면 개보수 작업 때문에 폐쇄되었다.

건물 뒤는 바로 철로가 있고, 철로 앞으로는 쌀을 실어 나르던 부잔교가 있다.

백년광장의 모습.
이 지역은 일본인 거주지라 구획이 반듯반듯하게 잘 뚫려있다.
덕분에 조선인들은 외진 곳으로 떠나 모여 살아야했다.

백년광장 내의 모습.


구 조선은행에서 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곧 만날 수 있는 곳은 구 십팔은행.

현재의 매무새는 조선은행보다 낫다.
 

당시의 구 십팔은행.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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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 베터리가 다 되었었는데, 가까스로 한 장을 찍었다.)

가옥이 비교적 깨끗하게 남아있는 것으로는, 이영춘 가옥과 히로쓰 가옥이 있는데 먼저 이영춘 가옥.
이영춘 박사는 일본인의 초대로 군산에 오신 분인데 한국의 슈바이처였다고 한다.

이 분이시란다.

당시 건물 사진들이 남아 있어서 디카로 역시 찍어 봤다. 이 건물은 군산 이사청.

군산부청

군산 시청.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개는 남겨 두어, 군산의 근대 건축 거리가 좀 더 풍부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런 건축물들은 '수탈과 식민'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 '산업유산'이라고 해서 우리의 산업이 근현대를 지나면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있는 건축물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의 '남선창고'인데,
소위 부산 사람들치고 남선창고에서 나오는 명태를 안 먹어본 이가 없을 정도로
그 유통과 산업의 역할을 단단히 했던 건축유산이다.
그런데 이 남선창고가 얼마 전 허물어지기로 했단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안타깝더라.

참고로 부산의 <남선창고>

이건 군산의 조선은행 뒤로 난 철로 주변의 창고들이다.
현재 이 창고들은 철거된 곳도 있지만 반 정도는 바로 앞 가구골목의
창고로 쓰이고 혹은 다른 용도로라도 쓰이고 있었다.

(이 사진 출처는 http://fahl.hanyang.ac.kr/ 한양대학교 동아시아 건축 역사 연구회)

이건 시내 동국사와 히로쓰 가옥을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군산부윤관저.
현재 음식점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물론 간판이며 모양새가 수려하거나 현명하게 리모델링된 것은 아니지만
폐쇄된 흉가처럼 있다가 철거되어 사라지는 것 보다는 낫다.


다시 이영춘 가옥으로 돌아와서, 입구.

초입.
아침인데다가 전 날 눈이 오고 흐린 날씨여서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사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난다.
영화 장화, 홍련 기운도 나고.

일식 가옥의 현관.

측면에서 보기.

뒤쪽은 나무와 돌, 시멘트로 정말 단단하게 지었다.
겨울 아침에 보려니 실내가 엄청 추울 것 같은 인상도 받았다.

벽난로가 있어서 집 뒤엔 이런 화기구가.



색이 참 고와서. 달린 등의 흰색도 예뻤고,
특히 창문에 조금씩 보이는 흰 레이스 커튼이 정말 좋았다.

뒤뜰에 앉은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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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내항은 우리나라 식민 시대를 짚어볼 수 있는 결정적인 장소들 중의 한 곳이다.
마침 군산세관에서 도슨트로 계시는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깊이 남는다.
이 분이 얼마 전 일본인 대학생들을 맞았는데 이 친구들이 일본 정통 우익 출신의 보수적인 학생들이었단다.
그런데 이들이 조선이 일본의 식민시절일 때의,
당시 미곡 수탈에 대한 기록들에 대해 매우 소상히 알고 있고 또 관심도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그 일들에 대해 하는 말이 참 무서울 정도였다.
즉 이들은 일본이 당시 조선으로부터 미곡 수탈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에서의 쌀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하더란다. 
보수와 민족주의가 함께 간다는 사실은 돌이켜보면, 일본 민족을 위한 보수주의자들은 그 민족의 생존을 
염려하는 뜻이다. 진짜 보수라면 민족주의와 분리될 수 없는데, 우리나라의 보수들은 그렇지 않아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입장대로 진정 일본국민을 위한다면 조선의 쌀을 수탈하거나 전쟁을 벌이기 보다는
내실을 기했어햐 하기도 하다.
즉 일본이나 조선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국가가 부르면 징병되어 전쟁에 나가야 하고,
조선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더라는 '노다지' 풍문에 조선으로 와서 밀정을 하거나
이런 내항에서 노동일을 하며 '생존'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자신들을 방어하려하는 정도는 '최선인 역사의식'과 거리가 멀다.
그저 '반성'과 '성찰'을 모르는 무식한 국민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 뜻이다.
경제적 관점은 그 카테고리 안에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미 벌어진 전쟁과 식민이 어떤 역사적인 해를 끼치고 병들게 했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그렇다.
무조건적인 식민 역사 지우기와 거짓역사로 국사 교과서에 '새칠하기' 정도로는
누가 우리에 대해 '존중'을 해 줄까. 우리 스스로 우리의 과거를 민망해하는 친일 보수가 판을 치는데 말이다.



부잔교 입구

당시 부잔교


당시 내항과 일대의 일본인 거주지.



아, 서해는 갯벌이 있지! 갯벌을 보면 들뜬다. 자연이 이리 가까웠던가 하는 미안함도 들고.






   근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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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솥들이 곰국을 끓여 냉동실에 낱개 포장을 해 두니 정말 편했다.
아무 것도 하기 싫고 힘이 없는데 배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고파올 때, 
녹여서 대충 후루룩 마시기만해도 되었으니 그야말로 기특한 곰국이었다.
(만들던 과정의 신경쓰임과 피곤, 고생은 금새 잊고...)
그래서 다시 한 번 '게으를' 나를 위해 '부지런'을 떨었다. (..)
수삼, 천궁, 오가피, 절각황기도 준비했다. 
(한 끼 먹고 한 끼 굶어도 굶어도 큰 지장이 없도록 몸보신을 한 번에 하려는 게으름의 소산;;)

찬물에 1시간 동안 담궈서 핏물을 빼고,
바로 요리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귀찮아져서 1시간 더 핏물을 빼고 -.-
닭껍질을 벗기면서 닭 네 마리와 사투를 벌이고... (고무장갑을 꼈다..흑)
깨끗이 물에 씻어서 대량으로 끓인 후, 살을 발라 살은 냉동실과 냉장실에 나누어 넣어 놓고
육수는 따로 걸러서 맑은 국물로 만들어 둔 것.

그랬더니... 그냥 국물을 데워 닭고기를 넣으면, 닭곰탕.

그 국물을 차게 식혀서 식초와 겨자, 땅콩이나 잣소스를 넣으면 초(식초)-계(겨자)-탕, 초계탕!
얼음 둥둥 띄워 먹는 새콤달콤한 맛.
소금으로 간을 하고 닭고기는 후추나 참기름을 조금 넣어 조물조물거리다가 넣으면 된다.
오이나 계란 지단을 올려도 되고, 키위 같은 과일을 넣어도 되고 입맛대로.
난 아무 것도 없어서 T-T..

그리고 초계탕의 남은 국물에 메밀면을 삶아 넣으면 초계 막국수!
캬캬캬

오늘 저녁엔 닭계장에 도전해 봐야겠다.
어제부터 연이어 먹었더니 좀 많이 슬퍼졌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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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처음에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건적으로 빠져 든다.  그러니까 운명적인 만남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특히 첫눈에 반하는 사랑의 경우 그 대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연인의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며, 그 대상은 자신의 내적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랑의 완전한 결정화작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싹트는 것 외에)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의심>의 과정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완전하지 않을지 모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어떤 증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스탕달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우선 경탄과 환상 그리고 적어도 한 가닥의 희망이 일어나고 여기에 곧 의심이 뒤따르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후)

“우리가 깨야 할 편견은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만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은 ‘말과 마차’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로 결혼이라는 마차를 끄는 상황이다. 아마 열정적인 사랑으로 마차를 끌면 변덕스럽고, 강렬하고, 외부 환경을 돌아보지 않고 활화산같이 질주하는 말로 인해 마차는 곧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열정과 사랑을 관계의 핵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결국 환멸을 느끼거나 이혼하기 쉽다는 연구 결과는 주목해 볼 만하다.
 미네소타 대학의사회 심리학자 엘렌 버셰이드는 이 문제를 연구한 끝에 열정적인 사랑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관계가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이혼율이 증가하는 이유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낭만적인 사랑의 경험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상관 관계가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트랜드 러셀도 낭만적인 사랑을 찬양하면서도 그것이 행복하고 안정된 결혼 생활의 토대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결혼에는 환상이 개입되지 않은 애정 어린 친밀감이 필요한데, 낭만적인 사랑은 ‘신비하고 마력적인 안개’로 연인들로 하여금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이란 불꽃처럼 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결혼처럼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 시작되는 첫 부분일 뿐이다. 사람들 말대로 현실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측면만큼이나 추하고 어두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가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한 힘든 인생의 과정을 같이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떻게 힘들고 때론 고통스러운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 식는다는 건 결코 슬픔이 아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발달하고 성숙하듯이 사랑의 감정 또한 성숙의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 하면 으레 <사랑에 빠지는 것>(falling in love)만을 떠올린다.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사랑은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랑을 하는 것>(being in love)을 거쳐 <사랑에 머무는 것>(staying in love)이란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거친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틀고, 자기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서서히 맞추어 가는 것을 말한다. 부모와 친구에게 향했던 사랑은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사랑에 빠질 때는 연인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뽑아 내어 분리시킴으로써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 반해, 사랑을 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현실 세계 안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같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상태는 아직 그들의 외부 환경과 자신들을 분리시켜 놓고 둘만의 결합 속에 있는 단계다.
 반면 ‘사랑에 머무는’ 상태는 그들의 사랑하는 관계가 외부 세계와 격리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견디어 나가는 단계다. 물론 열정적인 사랑의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기도 결코 쉬운 건 아니다. 그러니까 많은 커플이 열정에서 차분한 사랑으로의 탈바꿈을 반갑게 여기고,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 속에서 휴식을 하는게 아니겠는가.
 라쉬 교수는 사랑에 머물면서 서로가 충절과 신뢰와 같은 애정으로 결합되는 것을 <차가운 세상에 있는 천국>이라 표현했다.” 

- 김혜남,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중에서

친구네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뜨뜻한 아랫목에서 놀다가 집어온 책이었는데, 좋더라.
이런 유의 제목이나 이상한 정신분석 전문의들의 산만한 노트들을 싫어했는데 한 장 한 장 새겨볼 것이 많았다.
사랑의 성숙의 세 모습들 마다 각각의 열정이 산다고 믿는다. 열정은 노력이고.

p.s
책의 다른 챕터 조금 더 보기

“ 그녀도 내적으로 힘들던 어린 시절을 묻고 이제 그만 남편과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아직도 자기가 포장한 자기 자신을 벗어날 수가 없어서 힘들어 하고 있다. 남편에게 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일 용기는 안 나고, 그 상태에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감싸 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울분은 계속 쌓여만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친밀해지길 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상처가 복병처럼 숨어 있는 계곡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곳에 상처 없는 무균실 같은 곳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로 도움은 안돼지만 사랑은 할 수 있다며 갈등을 회피해선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서로의 상처만 깊어질 따름이다.”

“우리의 마음속엔 저마다 지울 수 없는 한 아이가 살고 있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자라고 싶지 않은 아이. 사랑은 그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이번엔 상처 대신 사랑이 내게로 온다. ‘나 예쁘지?’ 라고 물으면 사랑하는 이에게서 ‘넌 어떻게 해도 예뻐’라는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는 행복해져서 다시 성장할 용기를 내게된다. 아무리 사랑에 치이고 데었더라도, 사람들이 다시 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그 누구에게든 사랑하는 이가 생긴다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를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재발견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사랑이 식고, 그 사랑이 떠나 버리는 것, 그래서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를 알려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 전이란 과거 어린 시절에 중요하던 사람, 즉 부모나 형제에 대한 감정, 소망, 갈등 등이 현재의 치료자에게 대치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환자는 치료자에게 따뜻한 보살핌과 성적 욕구 등을 느끼며,  때론 치료자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현상은 분석 상황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더 강렬하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모든 걸 받아 주고, 이해해 주는 치료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럴 때 치료자는 환자가 보이는 반응이 전이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그 감정에 반응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해석해 주면서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므로 전이는 많은 사랑의 시작이 되지만 때론 매우 위험한 사랑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려 들면서 자기 자신의 안전이나 건재는 자신의 통제 하에 있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두려움도 그 전이 대상에게로 옮겨지게 된다. 사랑을 통해 그가 얻는 것은 더욱더 무기력해지는 자신과 그럴수록 강렬해지는 상대방에 대한 의존 욕구 뿐이다.

 정신분석에서 환자를 분석하지 않고 사랑하려고 하면 결국 치료가 파국을 맞이하는 것처럼, 사랑에서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고 치료를 하려 든다면 그 사랑 역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누굴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같이 느끼고 기뻐하며 슬퍼하며 서로를 깊게 받아들이는 과정, 그 과정에서 연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와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몸과 마음을 다해서 깊게 사랑하라.
 상대를 향해 눈과 귀를 크게 열고 끊임없이 서로를  발견해 가며, 때론 서로를 기다려 주고, 상대와 자신의 경계를 지켜 준다면, 굳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많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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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상 사건은 기본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가족, 우정, 사랑,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이 깨진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자기 구성이 산산이 부서진다. 피해자는 존재의 위기 상태로 내던져진다.
 세상이 안전하다는 느낌, 즉 기본 신뢰 (basic trust)는 생애 초기에 첫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습득된다. 이러한 신뢰감은 삶과 함께 시작되어, 전 생애에 걸쳐 한 사람을 지탱해 준다. 이것은 관계나 신념과 관련된 모든 체계의 기본을 형성한다. 보살핌 받는 최초의 경험은 자신이 속한 세상이 인간의 삶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그릴 수 있게 해주는 해주는 바탕이 된다. 기본 신뢰는 삶의 일관성, 자연의 질서, 신성의 초월적 질서에 대한 신념의 기반이 된다.
 외상 사건은 기본적인 신체적 안녕의 수준에서부터 사람의 자율성을 침범한다. 신체는 침해당하고 상처 입으며 더럽혀진다. 이들은 자신의 신체 기능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전투 상황이나 성폭력의 상황에 대한 증언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통제 상실은 외상의 가장 모욕적인 측면으로 꼽힌다.
 포로와 성폭력의 피해자를 공격하는 목적은 정확히 피해자의 자율성과 존엄을 모욕하는 데 있다. 따라서 외상 사건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신념을 파괴한다.”

“ 청소년기에 공포를 경험하고, 힘을 빼앗기는 경험을 하는 것은 청소년기라는 인생의 특별한 단계에서 달성해야 하는 세 가지 건강한 적응 과제를 위태롭게 한다. 정체성의 형성, 원가족과의 점진적인 분리, 그리고 더 넓은 사회적 세계의 탐색.
 성인기에 반복적인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이미 형성된 성격 구조가 파괴된다. 그러나 아동기에 반복적인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성격이 단지 파괴되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성격을 만들어 낸다.
 학대적인 환경 속에 갇힌 아이는 끔찍한 적응 과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아이는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속에서 신뢰감을, 안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안전함을, 끔직하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통제감을, 그리고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 힘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아이는 어른이 제공하지 못한 보살핌과 보호를 자신의 힘으로 보상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는 스스로를 보살피거나 보호하지 못한다. 아이가 가진 유일한 대처 방편은 심리적 방어라는 미성숙한 체계 뿐이다.

이들은 폭력과 죽음에 대한 위협과 사소한 규칙에 대한 집요한 강요, 간헐적인 보상, 그리고 고립, 은폐, 배신을 통해 다른 모든 관계를 파괴시키는 수단에 의해 억압받는다. 이러한 통제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의 경우보다 더욱 심각하게 자신을 학대하고 방임하는 이들에게 병리적으로 애착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복지, 현실, 혹은 삶을 희생하고서라도 애착을 유지하려고 분투한다.”

-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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