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의 군산 풍경인데
두 번째 사진의 내항 앞으로 가지런하게 배치된 적산가옥들은 일본인 거주지의 모습이다.
조선인들은 이 지역을 계획적으로 개발하고 새 집을 짓는 동안 계속해서 밀려나 산비탈에 모여 살게 된다.

군산의 당시 번화가였던 영화동, 장미동, 월명동에는 그래서 군산세관, 구 장기십팔은행, 구 조선은행,
그리고 백년광장을 중심으로 히로쓰 가옥, 월명동 가옥, 동국사 등 일식 건물들로 가득하다.

군산 시내를 걸으면서 알게 된 것은, 이 곳이 평야라는 것이었다. 평평한 땅이었다.
부산만 하더라도 어떻게 저런 곳에 동네가 들어섰을까 싶을 정도로 산비탈 사이사이로 빼곡히 집들이 있다.
하지만 군산은 가장 높은 해망공원의 지대가 101m 였으니, 도시가 참 사람살기 좋은 지대더라.
이렇듯 남도만 가더라도 산세가 어울지고 구비구비 구릉처럼 완만한 곡선을 이룬다.
그러니 드넓은 호남평야의 곡창지대의 쌀들을 수탈하기 위해 항구도시인 군산이 얼마나 번성했을지...

먼저, 군산세관.

50mm렌즈의 한계로 전체 모습을 찍지 못했다.
이 곳은 내부를 깨끗하게 박물관처럼 단장을 해 두었고, 자원봉사자로 보이시는 도슨트 한 분도 계신다.
(특히 그 분 책상 뒤에 있는 까만 금고가 인상적이었다. 그 때 사용하던 금고를 지금도 쓰고 있다.)
이곳 저곳 설명도 많이 해 주시고, 군산 건축지도를 천원에 살 수 있다. 군산 전도는 무료로 비치해 두었더라.
서구의 건물을 일본인들이 어떻게 근대화했는지 내부를 살펴 볼 수 있다.

당시 군산세관의 모습.

현재는 이 건물을 보존하고, 그 앞으로 새 세관이 있다.
너무 추워서 잠시 들어가 필름을 갈아 끼우고 몸을 녹이던 기억이 난다. 
손이 시려운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느라 방방 뛰어 다니고 골목들을 한달음에 걷지 못하는 게 아쉬웠었다.


옆모습

내부

일식 특유의 문 장식(?)으로, 적산 가옥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세관 옆에 있는 이 건물은 창고.
도슨트의 설명에 의하면 이 건물에는 당시 책들이 보관되던 서재이자 도서관이었는데
그 책들을 다른 건물로 옮기자 책에서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슬더란 얘기.
그만큼 일본인들이 건물을 잘 지었다고 한다.
여닫이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보니 세관 공무원들이 배구를 할 수 있게 네트가 있고 난로도 있고,
하지만 휑한 건 역시 창고 특유의 으시시함.


개화기 때 지어진 성당이나 채플에서 볼 법한 스타일.
아산 공세리 성당이나 대구의 대명동 선교사 묘지, 전주 전동 성당에도 많이 보인다.

'여행 기록 - 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권하는 사회  (13) 2009.02.28
3월 여행지 몇 곳  (0) 2009.02.24
27초 여행  (2) 2008.12.24
햇살 산책, 효자동과 삼청동  (2) 2008.06.17
토요일 낮 인사동, 친구  (2) 2006.04.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