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의 중심 전주가 예향으로 이름이 나서인지 한정식 중심이라면,
군산은 100년 항구 도시답게 해산물이 유명하다.
간장 게장과 아구찜이 태어난 도시이고 (마산식 아구찜과는 달리 참기름을 넉넉하게 쓰는 구수한 맛),
1920년대 부터 경성 다음으로 번화한 국제도시여서 (물론 쌀을 탑처럼 쌓아두고 오사카와 고베로 수탈하느라 그런 것이지만)
음식들이 하나같이 세련된 맛이있다.

중국식당들도 차이나타운의 중식도 아닌, 한국식 중식당도 아닌, 지역 특유의 향토색이 굳건하게 뿌리내린 느낌이랄까.
차림들은 간소했고, 꼭 필요한 찬들만 적은 양으로 놓여졌다.
지저분하다는 <복성루>를 못 본데다, 번성했던 도시가 쇠락한 기운이 드는 군산 거리의 느낌과 달리
식당들은 하나같이 단정했고, 특히 서빙하는 매무새들이 재바르고 자신감이 넘쳐 믿음직스러웠다.

유명한 짬뽕 명가들부터, 아구찜의 원조, 간장 게장 식당, 복쟁이 젓갈로 유명한 복어탕 전문점 화신옥 등
찾으면 찾을 수록 맛집들이 쏟아져나와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더 괴로웠다.
참고한 정보는 인터넷 네이버 카페의<전북 맛집 http://cafe.naver.com/qkrrornfl.cafe>
당시는 카페 가입을 안 받던 시기라 일일이 제목보고 검색하면서 정보를 모았다. ㅡ.ㅜ
이 곳 사람들 입맛이나 후기 등이 제일 나아, 여기만 참고했는데도 맛집들이 수북했다.

며칠 다녀온 군산 음식들에 대한 느낌은
특유의 남도 음식에 비해 담백하고 깨끗한 맛이고,
또 너덧 번 며칠 씩 다녀 본 전주 음식에 비해서는
소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선 굵은 느낌의 맛이라는 것.
개인적으로는 입맛에 100% 맞아서 한 달은 군산에서 살고 싶었다.

어쩜 그리 맛들이 깊고 개운해서 마음까지 모두 사람답게 만들어주던지...

1. 짬뽕

짬뽕으로 유명한 곳은 크게 <쌍용반점>(개운, 담백, 깊은 맛), <복성루>, <수송반점>이 있는데
네이버에서 '수송반점'으로 검색을 해서 사진을 보고 복성루와 쌍용반점을 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더랬다.
그런데 그냥 쌍용반점만 가고 말았는데, 이유는 단순하게도
첫 날 복성루를 가겠다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복성루를 싫어해서였다.
아저씨 기호와 식성에 의하면 복성루는 '순 오징어 뿐이고 식당이 지저분하다'는 것.
그래서 쌍용반점을 적극 추천하셨고, 둘 다 계획했던 곳이기에 선뜻 쌍용반점을 갔더랬다.

그런데 결국 너무 다른 먹거리가 많아서... 복성루는 끝내 가지 못했다.
(지금도 군산에 놔두고 온 두툼한 회들과 복어탕, 서대탕, 짬뽕들이 아른거린다... 어서 또 가고 싶다.)

어찌나 국물이 좋던지...
서울에서 배달시켜 먹던 그 짬뽕맛이 아닌 외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시래기국같은 가정식 요리였다.
이 때는 미처 몰랐는데 '짬뽕밥'을 시켰어야했다. 난 중국집의 기계면을 정말 싫어해서 국물만 먹어야했다.
(대구 팔공산 근처의 다 쓰러져가는 수타 짜장면집이 하나 있는데 여기 할머니가 해 주는 짜장면만 '면'을 먹는다.
태어나서 음식을 첫 술 뜨고, 귀가 뚫리고 눈에서 광명이 보이고, 머리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했던 곳이다.
기회가 되면 소개하겠음. 사진 찍은 게 아버지 컴퓨터에 있기 때문에...)

여행하는 동안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눈이 내려서 택시를 많이 타고 다녔는데 군산의 택시는,
일단, 택시 잡기가 정말 쉽고,
이단, 택시 기사에게 내가 길을 설명해야 하는 서울과 달리, 식당 이름만 말해도 다 찾아주는 전문성,
삼단, 제주도 택시 기사들과 달리 커미션 없이 추천 식당이나 특정 숙소까지 줄줄 읊어주시는 최고의 신뢰도!

아, 정말 즐거웠다.

다른 택시 기사분은 걸죽하고 찐한 복성루 짬뽕밥이 최고라며 연신 '면 말고 밥!'이라고 하셨다.
다음 번에 가면 짬뽕밥을 먹겠다.

2. 00식당

서울 외의 지역을 가면 확실히 <00식당>, <실비집>들이 많다.
대개는 백반 정식을 기본으로 식당들마다 오징어무침이나 달걀말이부터 전복죽이나 복어탕까지
각각의 무기를 지니는 곳들이다.
그래서 어느 지역의 모모 식당에서는 알탕을 맛 보라 하고,
어느 지역의 그 식당에선 해물 된장찌개를 먹으라하는 등
입소문이나 정보를 찾아 가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군산의 식당들은 대개 군산 대표 음식인 <아구탕>, <아구찜>과 같은 탕이나 찜을
기본으로 하고 찬으로 회와 생물들이 나온다.
간장 게장이 특화되어서 시내의 궁전 게장이나 금산 하구둑 가는 길의 계곡 식당 등이 따로 있어,
게장은 찬으로 나오지 않는 곳이 대다수이지만 (나오는 곳도 있다. <한주옥>)
양념 게장은 빠지지 않기 때문에 게도 즐길 수 있다.
찬으로 자연산 광어가 나오고, 생굴이 나오고, 데친 주꾸미나 오징어 회 등등이 늘 곁들여지기 때문에
굳이 회집이 아니더라도 시내 식당에서도 바다냄새 맡고 서울 촌놈이 생색내기는 충분하다.
(이를테면 블로그에 이렇게 먹은 음식 신기하고 좋았다고 샤방샤방거리며 포스트하는 생색내기같은 것 :-)

검색 끝에 찾아간 곳은, 송정 식당.

아구찜 가장 작은 것과 맥주 두 병, 3만 6천원.
겉보기와 달리 들어가면 널찍한 홀에 양 옆으로 좌식 방이 뜨끈한 구들장 깔아 놓고 기다리고 있다.
식당 안은 평일 저녁인데도 바글와글.
소주 한 병 놓고 탕 드시는 아저씨들이 많더라.

실은 여기 전문은 '탕'이다. (특히 서대탕. 하지만 간 날은 서대탕이 안 된다고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마산 아구찜과 달리 군산 아구찜은 뭐가 다른지 꼭 맛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찜을 시켰다.
(전문이 아니라고해서 맛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님!)

자연산 광어.
군산은 회의 살점을 두툼하게 마치 고기처럼 썰어내는 것이 특징이란다.
한 이틀 숙성시킨 회인지
아니면 자연산 광어라는 것은 원래가 그것이 보들보들하다 못해 마치 스폰지처럼 혀 위에서 사르륵 녹는 것인지
입에 넣자 마자 탄성이 절로... (이런 구태의연한 표현!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껏 광어라는 것은 쫄깃쫄깃한 맛으로 먹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두 점씩 막 먹었다. 흑흑
탱글탱글하면서도 솜사탕처럼 녹는 그... 고소함과 향긋함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우걱우걱...
한 접시 더.
우걱우걱...
가족끼리 남해에 굴 좀 먹으러 다녔지만 이젠 혼자 근근히 사느라 그 맛도 잊어 버린 생굴!
우워.. 맛있다.
제대로다.

군산에서의 일정이 빨리 끝나게 되면, 순천으로 꼬막을 먹으러 가려고 생각했었다.
(물론 순천만도 있고)
하지만 군산 곳곳이 놀라워서 쉽게 뜨지 못해서 꼬막이 아쉬웠는데, 여기서 꼬막 한을 풀었다.
군산 음식이 대체로는 간이 없거나 약한 편인데,
이렇게 양념맛을 살려 줘야 하는 요리에서는 자심감 있게 확 터트린다. 진짜 범접할 수 없는 양념 맛이었다.
(간장이 일단 맛이 좋더라. 그럴 수 밖에... 물이 좋으니 ㅠ_ㅠ)

전체 찬은 딱 먹을 만큼만 나오고,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동치미와 김치는 젓갈이나 양념 범벅없이 잘 익혀진 김장 김치들이었고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김치 맛)
전은 막 구워냈는지 식은 기름 냄새 없이 고소했다.
전이나 김치, 나물 무침과 같이 정성 외에는 답이 안 나오는 '손 많이 가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내공이 상당.
김치, 동치미, 나물 무침 몇 개와 구워낸 조기만으로도 대만족이었던 곳.
정말 대단하더라.

아구찜은 참기름이 좀 과해서 먹다 보면 구수, 들큰하고 느끼하다.
하지만 매운 양념맛에 먹을 수 밖에 없는 신사동 아구쯤들과 달리, 아구 자체가 쫀쫀하고 살이 실해서 만족.
(다시 한 번, 나는 아구와 복어를 사랑함을 느꼈다.. 이것들은 생선이 아닌 궁극의 맛인게야... 흑흑)
남은 콩나물과 미나리랑 양념 못 싸온 게 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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