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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1월 20일
영실에게.
이곳 생활은 몹시 외롭다. 아침에 일어나서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내릴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인가! 그러기에 일 년 만에 받은 것이라 할지라도 서울에 있는 사촌동생으로부터 "오빠, 당신은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빠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마세요."라는 편지를 받았을 때 며칠을 두고 잠을 이룰 정도로 기쁨에 달아오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네가 편지를 쓰겠다는 말이 반갑지는 않다. 그것은 분명 '철자법이 틀린 것 투성이인 너의 편지'가 창피하기 때문은 아니다. 왜 그럴까?
나는 전주 교도소 시절에 받아 본 너의 편지 한 통을 제외하고, (나의 옹졸하고 비뚤어진 성격 때문인지) 언제나 너의 편지에서 야릇한 수치심을 맛본다. 나는 항상 철없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고 있다는, 그런 수치심 말이다. 내가 전주 교도소 시절 너의 그 정성들인 편지를 조금 평하고 흠잡았다고 해서 기분이 상해 버렸는지, 그 후에 너는 언제나 엽서 아니면 푸른 항공서간에다가 달랑 몇 자만 적어서 편지를 부쳐 오곤 했다. 그리고 내용도 항상 공허한 '구호'의 되풀이가 아니었는가. 네가 나를 몹시 염려해 주고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나는 '구호'가 싫다.
나는 가령 '몸도 마음도 건강하십시오.'를 백 번 외치는 것보다 아버지께서 낚시 가셔서 고기를 얼마나 잡았으며, 오늘은 무엇을 잡수셨으며, 네가 오늘 어떤 TV프로를 보고 어떻게 느꼈으며, 요즘 무슨 책을 보고 있으며, 너의 애인은 어떻게 생겼으며, 그곳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등등을 백 배 천 배 더 알고 싶은 것이다. 구호 대신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수수하게 적어 보내기에는 너의 허영심이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건강하십시오!'는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너는 내가 그런 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건강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건강'하다. 그것은 네가 '건강하십시오!'라는 구호를 외쳐 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설령 내가 건강하지 않다 해도, 그것은 나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
일 년 만에 보는 너는 가사에 시달려서 그런지 갑자기 '아주머니'기 되었더구나. 화장한 모습도 처음 보았고... 늙지만 말아라. 어쩐지 나까지 서러워진다. 제발 시집갈 때까지만이라도 늙지 말아라.
영실에게.
이곳 생활은 몹시 외롭다. 아침에 일어나서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내릴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인가! 그러기에 일 년 만에 받은 것이라 할지라도 서울에 있는 사촌동생으로부터 "오빠, 당신은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빠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마세요."라는 편지를 받았을 때 며칠을 두고 잠을 이룰 정도로 기쁨에 달아오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네가 편지를 쓰겠다는 말이 반갑지는 않다. 그것은 분명 '철자법이 틀린 것 투성이인 너의 편지'가 창피하기 때문은 아니다. 왜 그럴까?
나는 전주 교도소 시절에 받아 본 너의 편지 한 통을 제외하고, (나의 옹졸하고 비뚤어진 성격 때문인지) 언제나 너의 편지에서 야릇한 수치심을 맛본다. 나는 항상 철없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고 있다는, 그런 수치심 말이다. 내가 전주 교도소 시절 너의 그 정성들인 편지를 조금 평하고 흠잡았다고 해서 기분이 상해 버렸는지, 그 후에 너는 언제나 엽서 아니면 푸른 항공서간에다가 달랑 몇 자만 적어서 편지를 부쳐 오곤 했다. 그리고 내용도 항상 공허한 '구호'의 되풀이가 아니었는가. 네가 나를 몹시 염려해 주고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나는 '구호'가 싫다.
나는 가령 '몸도 마음도 건강하십시오.'를 백 번 외치는 것보다 아버지께서 낚시 가셔서 고기를 얼마나 잡았으며, 오늘은 무엇을 잡수셨으며, 네가 오늘 어떤 TV프로를 보고 어떻게 느꼈으며, 요즘 무슨 책을 보고 있으며, 너의 애인은 어떻게 생겼으며, 그곳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등등을 백 배 천 배 더 알고 싶은 것이다. 구호 대신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수수하게 적어 보내기에는 너의 허영심이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건강하십시오!'는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너는 내가 그런 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건강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건강'하다. 그것은 네가 '건강하십시오!'라는 구호를 외쳐 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설령 내가 건강하지 않다 해도, 그것은 나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
일 년 만에 보는 너는 가사에 시달려서 그런지 갑자기 '아주머니'기 되었더구나. 화장한 모습도 처음 보았고... 늙지만 말아라. 어쩐지 나까지 서러워진다. 제발 시집갈 때까지만이라도 늙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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