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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씨 웹-better than prozac씨의 웹을 거쳐.
시뮬라끄르의 용어 사용에 대해 긴 글을 쓰다가 '내가 왜 바보들에게 시간을 쓰는 걸까' 싶었다.
글을 관두고 <들뢰즈랑 칸트가 공통감에서 어떻게 갈라지는지> 이야기겸 글을 듣다가,
그래서 칸트를 다시 떠올렸는데, '내가 제일 바보'더라.
사람이 사람한테 말을 하는데 상식적인(유행하고 떠도는 것이 아닌) 말을 한다는 것.
결국 그래서 칸트는 윤리로 회귀하듯.
어제 우리 지도교수님 때문에 조금 울었다. 선생님의 인품과 인생이 감동을 주어서-
대왕펭귄같은 우리 선새엥님 사랑해요!
October 8, 2005
책을 읽으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을 비판적 독서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의 독후감은 자신의 입장에서 그 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술어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 훑기일 뿐이다.
시뮬라끄르의 용어 사용에 대해 긴 글을 쓰다가 '내가 왜 바보들에게 시간을 쓰는 걸까' 싶었다.
글을 관두고 <들뢰즈랑 칸트가 공통감에서 어떻게 갈라지는지> 이야기겸 글을 듣다가,
그래서 칸트를 다시 떠올렸는데, '내가 제일 바보'더라.
사람이 사람한테 말을 하는데 상식적인(유행하고 떠도는 것이 아닌) 말을 한다는 것.
결국 그래서 칸트는 윤리로 회귀하듯.
어제 우리 지도교수님 때문에 조금 울었다. 선생님의 인품과 인생이 감동을 주어서-
대왕펭귄같은 우리 선새엥님 사랑해요!
October 8, 2005
책을 읽으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을 비판적 독서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의 독후감은 자신의 입장에서 그 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술어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 훑기일 뿐이다.
진정한 비판은 그러한 독서 이후에 그 책을 다시 읽음re-read으로써만 가능하다.
가령 처음 읽을 때는 지루하다고 여겨지던 부분도 '이 저자는 왜 이걸 썼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말해서 저자의 입장에서 읽어보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음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이러한 독서는 텍스트 내부에 입각하여 읽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텍스트를 비판하는 것이므로 내재적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머리가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대체로 훑어보기에 능하다.
그들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항상 자신의 머리를 이리저리 굴린다.
텍스트에 온전히 파묻히지 못한다.
텍스트를 앞질러 나간다.
선생은 3페이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걸 눈으로 다 읽은 뒤 벌써 5페이지를 뒤적거리고 있다.
책읽기를 업무처리 하듯이 한다.
필사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굼뜨고 더딘 사람이 똑똑하고 재빠른 사람들보다,
업무처리에는 미숙할지 몰라도 책으로부터는 결국 더 많은 것을 얻어낸다.
Posted by gaudium at 2:2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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