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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가우디 투어에 앞서 이 포스트의 내용만 읽어도 가우디를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우디의 작품들은 까탈루니아지역의 자연에 기반한 매우 독창적인 것들이어서,

그의 작품을 바로크라던지 고딕 등의 한 사조에 끼워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건축 역사의 어떤 틀에 그가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가우디의 독창성은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카탈루니아는 이슬람 지배 하에 있던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을 지켜낸 곳이다. 그래서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자꾸 독립하겠다는 것도 그 이유가 크다.

카탈루니아의 대표 도시가 바르셀로나고, 바르셀로나인들은 자신들이 오히려 '파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가우디 역시 '민족주의자'이고, '자연주의자'이다.

카탈루니아의 자연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자신의 도시를 아꼈다.

 

가우디의 조교였던 joan bergos I masso의 증언에 따르면

가우디는 일생 동안 자연물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가우디는 까탈루니아 지역의 리우돔(riudoms)이란 곳에서 구리가공업에 종사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3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형제들이 모두 요절했다고 한다.

가우디 역시 병약하였는데 5살 때 관절염을 앓았단다.

그래서 또래 아이들과 뛰어 놀지 못하고 혼자서 자갈이나 수수대로 조형을 만들거나 곤충이나 도마뱀을 관찰하면서 지냈다.

 

 

 

곡선으로 구성된 거미줄을 보았으며,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나리꽃, 양귀비꽃을 보았고,

매혹적인 나선형 달팽이집을 보았으며, 나무 위로 기어오르는 뱀을 보았고,

나무기둥이 서로 휘감긴 올리브 나무를 보았다.

농가의 굴뚝은 무장한 병사로 보였고, 사탕수수 줄기는 창으로, 넓은 잎사귀는 방패 또는 캐노피로,

양치기의 헛간은 아름다운 저택으로, 사이프레스 나무는 성당 기둥으로 보였다.’

 

이런 유년 시절의 고백들을 들어 보면, 가우디의 작품 세계가 머리 속에 하나 둘씩 지나간다.

구엘 공원을 대표하는 도마뱀, 까사 바트요 지붕의 용마루, 성 가족 성당의 부드러운 곡선(고딕 교회들과 너무나 구별되는),

지중해의 산을 나타내고자 했던 까사 밀라 등등.

다채로운 색들과 구불구불한 곡선들, 전통적인 것 같지 않은 개성이 강한 어린아이의 상상이 현실화된 것 같은 그의 작품들.

이렇게 어린 시절의 경험이 가우디에게 자연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었고,

세상은 곡선으로 이루어졌다고 인식하게 하였으며, 자신의 진정한 스승은 자연이라는 신념을 갖게 하였다고 한다.

 

1976년 푸츄 이 보아다(puig I boada)가우디의 사상(el pensament de gaudi)’이 대표적인 가우디 연구책인데

여기에 보면 다음과 같이 가우디의 건축 이념에 대해 소개해 두었다.

 

독창성은 근본으로 돌아갈 때 창출되는데, 모든 것의 근본은 자연이다.

    연속성이 쉽게 발견되는 자연의 형태는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자연과 같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정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자연에는 동일한 형태가 반복되는 일이 없다.

⊙ 예술작품의 최고 수준인 조화는 작품을 강조 또는 장식하는 빛에서 비롯된다.

    건축은 빛을 배열하고 정돈하는 작업이며, 건축의 생명은 대상물에 명확한 관념을 부여하는 색채이다.

⊙ 예술이 과학을 풍요롭게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남성이며 과학은 여성이다.

    우아함과 절제됨은 유사하지만, 절제는 인색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 균형은 건축물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균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건축가를 포기해야 한다.

 

 

 

 

가우디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개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까사 비센스, 엘 카프리초, 구엘 별장, 구엘 저택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기 절충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무데하르 양식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양식과 혼합된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식 디자인이다.

이때만 해도 직선, 장식, 자연주의에만 골몰했다.

 

2기는 테레사 수녀원 학교, 아스토르가 주교관, 까사 칼베트, 베예스 구아르드 등으로 중기 성숙라고 한다.

이때 가우디는 구조주의가 주는 합리성의 영향을 받았다. 균형, 구조, 안정감...

 

3기는 가우디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가우디의 전성기로, 이 모든 것을 자신만의 양식으로 재해석해서 세상에 내보인다.

까사 바트요, 까사 밀라, 구엘 공원,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 대성당)을 들 수 있다.

까사 바트요는 자서전적인 작품으로 전통과 단절하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가우디 최초의 작품이다.

까사 밀라는 가우디 건축의 절정을 보여주는 최대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1기 까사 비센스, 가우디 최초의 건축물 보기

1기 구엘 별장과 구엘 저택 보기

2기 성 테레사 수녀원 보기

2기 까사 칼베트, 가우디의 개성이 시작된 곳 보기

3기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가우디의 자전적인 건축물 보기

3기 구엘 공원 보기 

3기 밀라레스 문 보기 

3기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의 역작 보기 

 

그리고,

나홀로 가우디 투어, 나만의 가우디 투어를 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는 '까사 비센스'와 '성 테레사 수녀원' 그리고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구엘 공원', 마지막으로 '성 가족 성당' 이 다섯 개를 추천한다.

물론 더 많이 볼수록 좋다.

그리고 가능하면 성 가족 성당을 마지막에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는 '돈' 주고서라도 꼭 보고, 성 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은 꼭 실내에 안 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래 사이트를 추천한다.

바르셀로나는 그래도 '세비야'나 '그라나다', '꼬르도바'에 비하면 날치기가 조금 덜하다. 해가 지기 전이면 크게 위험하지 않으니 다녀보자.

의외의 재미가 많다. 동네 구경,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을 가득 가득 만날 수 있다.

추천 사이트

http://suitelife.com/2011/05/11/the-one-day-barcelona-gaudi-tour/

이렇게 메트로를 중심으로 점을 찍어 놓고, 가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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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로서의 삶을 위대한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마감하고자 했던 그는

카사 밀라 건축의뢰를 마지막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게 된다.

사회적 혼란기에도 종교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가우디의 주된 관심은 예술적인 건축물의 건설과 건축을 통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돌로 된 성서로 부르기도 할 만큼

거의 모든 부분에 성서의 많은 요소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의 작품 중 유일하게 현재도 건축 중인 작품으로

그의 신앙심과 사상까지 모두 표현된 역작이다.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과 예수를 상징하는 대탑,

각각의 테마를 담아내고 있는 파사드와 조각 등

가우디는 종교적인 표현에 있어서 수 많은 상징성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연출하였다.

 

 

 

가우디의 작품들 중 가장 장식성과 표현성이 강한 작품이다.

유럽의 교회들이 주로 고딕 양식인 것을 고려한다면,

이 성당은 정말 전례없는 작품이다.

 

 

 

 

 

 

2기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기하학적인 선과 원이 주를 이루며

자유로운 곡선은 세부적인 장식과 가구, 내부의 개구부에서만 나타나고 있으며

통일된 질감 연출이 돋보인다.

 

이에 비해 제3기는 그의 '신념'이나 '열망'이 곡선과 바로크적인 고딕, 카탈루니아의 자연물과 함께 드러난다. 

 

 

 

공사 중인 성당

 

 

 

 

조각상들마다 그의 신앙심이 돋보인다.

 

 

실내는 까사 바트요의 1, 2층처럼 '뼈'와 같은 형상이다.

 

 

 

 

이건 까사 바트요를 설명한 대목인데,

뼈와 같은 파사드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실내 기둥에서도 보인다.

 

까사 바트요보다 더욱 더 장엄하고 크다.

 

 

 

 

 

 

거대한 공룡의 몸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빛은 꽃을 만들어낸다.

 

 

 

스테인드 글라스

 

스테인드 글라스도 구엘공원에서 보였던 타일과 같은 느낌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

 

 

까사 밀라 옥상에서 보던 투구를 쓴 환풍기가 연상된다.

 

 

정말 아름답다.

 

 

 

모든 건물의 외벽에는 조각, 조형들이 새겨져 있다.

 

 

 

 

 

초현실적이지만, 가장 우리의 마음과 가까운 건축물.

이것이 가우디의 건축인 것 같다.

익숙하지 않아서 생경하지만 그는 평범한 카탈루니아 사람들의 정서를 그대로 세상에 올려내 냈다.

 

가우디 건축물을 '의무감'으로 보지 말고,

여행 중 한 건축가의 성찰과 고민을 읽는다는 '공감'의 마음으로 둘러 본다면 정말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벽, 내벽 모두 '상징'이 있다.

그러나 '상징'을 듣고, 읽는다는 것은 그저 그런 '정보'일 뿐이다.

결국은 내가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만의 가우디 투어 계획하기

 

1기 까사 비센스, 가우디 최초의 건축물 보기

1기 구엘 별장과 구엘 저택 보기

2기 성 테레사 수녀원 보기

2기 까사 칼베트, 가우디의 개성이 시작된 곳 보기

3기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가우디의 자전적인 건축물 보기

3기 구엘 공원 보기 

3기 밀라레스 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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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는 '문'도 설계했다. :-)

제3기 작품인 밀라레스 문(Puerta Miralles)이 바로 그것이다.

 

구엘 별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이다.

구불구불한 곡선의 문.

 

지금은 집합주택가에 있다.

 

 

작은 키의 가우디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문'이라길래 가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동상이 있다고 해서 갔었다.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아무리 봐도 '가우디'스러운 것이 없다.

 

얼마나 뺑뺑 돌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설마 저... 저... 끝에 있는 저거?

 

한달음에 달려가고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곳을 찾은 이는 나뿐이 아니었다.

 

반가웠다.

 

 

 

크리스마스 전후라 길거리엔 성탄 장식용 식물이 자주 보였다.

 

 

 

이런 집합주택가에..

가우디 덕분에 바르셀로나 하나는 샅샅이 훑고 다닌다.

 

나만의 가우디 투어 계획하기

 

1기 까사 비센스, 가우디 최초의 건축물 보기

1기 구엘 별장과 구엘 저택 보기

2기 성 테레사 수녀원 보기

2기 까사 칼베트, 가우디의 개성이 시작된 곳 보기

3기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가우디의 자전적인 건축물 보기

3기 구엘 공원 보기 

3기 밀라레스 문 보기 

3기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의 역작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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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제3기 건축물들은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그리고 구엘 공원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의 인생 역작인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은 말할 것도 없고.

 

제3기는 다양한 요소를 연속성으로 승화시킨 조각적인 형태,

3차원 공간에 시도한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는 아르누보,

환상적인 색과 빛의 이용을 적극적으로 시도함으로써 가우디의 독창적인 양식이 확립된 시기이다.

 

구엘 공원은 이제껏 집이나 단일한 건축물을 설계한 것에서 더 나아가

하나의 공원, 지대를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구엘 공원>(1900~1914)

 

 

다색상을 이용한 장식성이 강하다. 석재 및 타일을 중심으로 표현하였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일생에 빼놓을 수 없는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 바시갈루피의 전원주택지구에 대한 구상에서 출발하였다.

구엘은 당시 신흥 갑부 2세로 사망하던 해까지 35년간 구엘 가문에 필요한 대부분의 건축을

가우디에게 맡겼으며, 그를 가문의 건축가로 임명하게 된다.

 

 

정문에 위치한 그리스 도리아식 건축물과 광장,

그 주위의 계단에는 그리스 신화를 담은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구엘공원의 산책로는 공원부지의 지형에 따라 복잡하게 구성되었으며,

길을 지지하는 기둥들은 아치와 도리아식 구조로 원산지의 돌로 만들어졌다.

공원이 위치한 지역의 자연환경에 동화를 추구한 구성계획과

타일을 활용한 트랜카디스 기법이 인상적이다.

 

 

 

 

타일과 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띤다.

 

 

 

그가 유년 시절 자연 속에서 지냈을 때 즐겨 보았다는 도룡뇽.

 

이 아니라, 신화 속의 용을 나타낸 것이다. :-)

 

 

 

 

 

까사 바트요에서 보던 지중해빛 바다 색상 타일

 

그리고 오른쪽 노란색 꽃은 까사 비센스에서 보이던 아프리카 금잔화이다.

 

 

 

 

 

 

 

 

 

 

 

 

 

 

 

 

그리스식 도리아 양식의 기둥

 

 

 

 

금잔화와 같은 타일

 

 

 

 

 

 

 

 

 

 

 

 

 

 

뒷 편은 또 하나의 아프리카 같기도 하다.

 

 

 

 

 

천장도 매우 인상적이다.

구엘공원은 그리스 도리아식 신전 위에 넓은 광장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그러나 순수 도리아식 양식과는 달라서 가우디 특유의 해석이 들어가 있다.

광장의 벤치는 인체에 편리한 인간공학적 디자인을 위해 사람의 몸을 모델로 삼아 주형을 떴고, 벤치 표면의 기묘한 꼴라주는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그림과도 같다.

 

 

 

 

 

높은 데 올라가서 본 풍경

 

 

 

 

 

 

 

 

 

천장도 모두 타일이다.

 

 

 

 

 

정말 자연스럽다.

 

그런데 기이하고, 이상한 나라다.

 

 

 

과자로 만든 집같다.

 

 

 

 

 

 

 

 

 

 

 

 

 

 

 

 

 

 

 

 

반나절 동안 머물다가 나와서 숙소로 가는 길

 

정말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공원'.

 

샌드위치도 먹고, 누워서 음악도 듣고...

 

이 근처 주택가들도 꽤 볼거리가 많았다.

 

 

 

 

 

 

철문을 지나 돌아서는 길

 

 

 

 

 

동네

 

 

 

 

코카콜라

 

 

구엘 공원 찾아가는 길 : 메트로 L3, ‘Lesseps’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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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까사 비센스, 가우디 최초의 건축물 보기

1기 구엘 별장과 구엘 저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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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가우디의 자전적인 건축물 보기

3기 구엘 공원 보기 

3기 밀라레스 문 보기 

3기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의 역작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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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바트요(Casa Battlo, 1904~1906)와 까사 밀라(Casa Mila, 1906~1910)는 가우디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까사 비센스와 테레사 수녀원과 같은 1기의 건축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중간의 건물이 까사 바트요이다.

지붕도 곡선이고 테라스도 곡선... 1층과 2층의 파사드, 기둥도 곡선이다.

이는 가우디가 지중해의 파도, 바다를 상징하고자 하였기 때문인데

벽면은 갖은 색들로 빛난다.

내가 공간 인지 능력이 남다른 이유는

내가 솥 전문 대장장이의 아들이자, 손자이자, 증손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대장장이였고, 할아버지 또한 대장장이였다.

어머니 쪽도 마찬가지다. 선조는 모두 공간감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외증조부께선 목수였고, 외조부께선 뱃사람이었다.

이렇게 공간개념이 넘치는 선조가(공간적인 일, 즉 건축가로서 일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조형적 감각과 공간감을

입체적인 형()을 다루는 집안 환경에서 이어 받았다고 생각하였단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가 작업하는 작업장에서 만들어지는 수공예품들의 제작과정이

놀이이자 학습이었고, 그 곳은 좋은 교육 장소였다.

가우디는 그가 살아온 지역적 특징인 지중해를 바라보는 환경이

카탈루냐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조형감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는 중심이 있다. 지중해는 대지 한가운데 있는 바다이다.

해변에는 중용의 빛이 45도로 비추고 있다.

이 빛은 물체를 밝게 비추어 형태를 명료하게 해준다.

이와 같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빛의 균형으로 이곳에서

위대한 문화예술을 꽃 피울 수 있었다.”

가우디는 자신의 시대적, 지역적, 민족적 기타 모든 환경과 배경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복합적으로 그의 조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작품성을 완성하는 데에 그의 열정이 더해져 비교될 수 없는 독창성을 탄생시켰다.

그에게 또 하나의 사상적 중심의 역할을 했던 것은 종교이다.

건축가로서의 삶을 위대한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마감하고자 했던 그는

카사 밀라 건축의뢰를 마지막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게 된다.

리모델링한 주택임에도 가우디 절정기의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까사 바트요는 가우디의 주택건축으로 1906년에 완성된 유일한 리모델링 작품이다.

바트요 가족을 위해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건물을 신축할 예정이었지만 허가에 문제가 생겨 바트요가 가우디에게 리모델링을 의뢰하였다고 한다.

1층은 상점, 2층이 바트요 가족의 주택, 3~6층은 층마다 2가구씩 8가구의 임대 아파트로 사용되었단다.

가우디는 이 주택을 19세기 당시 유럽의 관심사였던 해저 또는 동굴탐사를 모티브로 추상화시키고자 하였다.

건축물은 아름다움보다 기능이 먼저 추구되어야 한다는 그의 가치관에 따라,

중정을 확대시켜 채광과 환기의 목적을 충족시켰다.

그리고 출입구와 가까운 중정 쪽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수직동선을 단축하였다.

그리고 색채는 건출물에 생명을 부여한다는 생각을 갖고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랑과 초록의 환상적인 색이 조화되게 하였다.

까사 바트요는 색채는 생명이고 죽음의 가장 명확한 증거는 색채가 없는 것이다. 색채는 건축물의 형태를 명확하게 하며, 생명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가우디의 사고가 가장 극명하게 표현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아쉽게도 실내 사진이 없는 것은 나의 부주의로 파일을 삭제해서이다;;;;

까사 바트요가 '뼈로된 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1층과 2층의 파사드 덕이 크다.

자세히 보면 3층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연속성은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자연에서 쉽게 발견되는 연속성이 건축물에 적용될 때 아름다움이 창조된다.’고 믿었던 가우디의 사고가 실현된 곳은 파사드이다.

1, 2층의 석재기둥부터 창, 지붕, 옥상의 굴뚝까지 단절됨이 없다. 동물의 골격을 모티브로 삼아 선으로 석재조각이 휘감겨 있는 것이다.

이제 까사 밀라로~

까사 바트요를 보고 건축가가 이 건물을 의뢰했다고 한다.

물결처럼 디자인되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보이는 석재 파사드,

상상력이 넘치는 옥상의 굴뚝들,

채색벽으로 둘러써인 2개의 중정으로 채광과 환기를 기능적으로 해결한 마지막 주택작품이다.

가우디는 카탈루니아 지역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까사 밀라는 집 뒤에 있는 카탈루니아 지역의 대표 산인 몬세라트 산을 본 딴 것이다.

까사 밀라는 또한 채석장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바르셀로나를 둘러싼 모래언덕(사구)이나

절벽의 실루엣과도 흡사한 외관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반죽덩어리처럼도 보이는데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건축물이다.

바트요와 마찬가지로 중정이 먼저 맞아준다.

중정의 계단도 실루엣이 환상적이다.

처음부터 까사 밀라를 보았다면 가우디의 진면목을 잘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왜 미술사에서 '사조'가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다.

까사 비센스부터 가우디의 초기작과 중기작들을 훑어 보며 직접 본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

차근차근 내 속에 쌓여서 건축물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하게 되면... 그 감동은 수 십 배로 늘어 난다.

난 이 옥상에서 머리를 한 대 망치로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정말... 놀라웠다.

사실 이전까지는 '회화'가 더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우디의 까사 밀라 옥상을 본 이후로는 '조형물'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이 생겼다.

이 초현실적인 곳이란...

저 멀리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보인다.

투구를 쓴 듯한 저 형상들은 환기구이다.

모든 곳에 기능과 더불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자연에 대한 상징, 추상화를 잊지 않는다.

현대 건물들과 더불어 이 옥상에 있노라니 정말 가슴이 벅찼다.

더구나 옥상은 완벽하게 이상한 나라이다. 기이한 굴뚝과 환기탑들은 초현실적이다.

거리가 내려다 보인다.

사랑에 빠진 연인

어디를 보아도 '이상한 나라'다. 가우디가 대학 졸업식 때 학장이 졸업장을 주며 그랬다고 한다.

"내가 지금 바보에게 졸업장을 주는 것인지 다시 없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건축사 어디에도 넣을 수 없는 괴짜...

그런데 건물만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천재...

진심어린 한 사람.

이 반죽덩어리 건물이라니..

"가우디의 마지막 민간 건축 작품인 까사 밀라는 석재 질감특성으로 라 페드레라(채석장)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건물외관 전면에 걸친 곡선형태를 적용한 조형적 구조체로 석재의 주된 활용과 철재 발코니 장식은

잡한 외형에서도 단순한 조화를 통해 간결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가우디의 작품 중 유기적인 형태의 건축표현의 절정에 이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거의 사흘 동안 숨도 쉬지 않고 가우디 건축물들을 보러 다녔다.

이렇게 잠깐 쉼표를 찍는 기분이다.

12월의 바르셀로나

여러 공동주택

집합주택

나서는 문도 아쉽다

거리의 벤치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가 있던 거리

일상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까사 바트요 찾아가는 길 : 메트로 L3, ‘Passeig de Gracia’ 역이다.

까사 밀라 찾아가는 길 : 메트로 L3, ‘Diagonal’역이다.

 

나만의 가우디 투어 계획하기

1기 까사 비센스, 가우디 최초의 건축물 보기

1기 구엘 별장과 구엘 저택 보기

2기 성 테레사 수녀원 보기

2기 까사 칼베트, 가우디의 개성이 시작된 곳 보기

3기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가우디의 자전적인 건축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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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의 역작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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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칼베트(casa calvet)> (1898~1904)

가우디의 '까사' 시리즈 중 첫 번째 것이다.

가우디 작품 중 유명한 것으로 '까사 칼베트',

그리고 지중해의 파도를 본 따 만든 '까사 바요트'(뼈로 된 집)

마지막으로 가우디의 자전적인 건축물인 '까사 밀라'.

이 셋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지만 역시 출입이 안 되는 곳이 까사 칼베트이다.

사암과 철의 자연색이 노출된 외관과 화강암과 벽돌의 자연색이 어우러진 곳이다.

벽돌 때문인지... 창들의 테라스 때문인지 굉장히 화려하다.

바로크적이다.

당시 1층이 직물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입구의 장식 기둥은 실패를 타고 올라가는 실의 모양이다.

흥미로운 것은 옆 건물 역시 가우디 건축물처럼 되어 있다.

이것도 가우디 작품인가...

가우디의 건물들을 보면 굉장히 튄다. 너무나 독창적이어서 현대의 거리들과 어우러지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정작 가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고 '개성'으로 여겨진다.

주소는 Carrer de Casp, 48
찾아가는 방법은 메트로 L1, 'Urquinaona'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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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레사 수녀원(Colegio de las Teresianas)은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건축물이었다.

일단 가우디의 작품들 중 초기 작 중 하나여서 접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 건물을 마주 보는 순간 시각적으로 너무 신선하고 놀라웠다.

이 건물이 가우디의 것이라니...

내가 알던 가우디는 '성 가족 성당'과 '까사 밀레', 그리고 '구엘 공원'의 유려한 곡선들..

유치하리만큼 고집스러운 자신만의 상징들... 이었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신고딕양식의 건물이라니...

가우디가 이런 작품도 만들었구나...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이후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빠르고 깊이 되었다.

수녀원답게 절제라던가 근엄함 등이 설계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이 건물은 호아킴 코디나 마탈리라는 무명의 건축가가 비잔틴 양식으로 짓다가 가우디가 인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전의 건축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1층 위로 4층 높이의 직각 건물을 건축함으로써 압도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지붕은 뾰족하게 세워 고딕 양식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장식성과 곡선으로 대표되는 아르누보 사조에 치우치지 않고,

구조적으로 합리적인 고딕 양식을 꾀하려는 가우디의 사상이 엿보인다.

소재에서 표현되는 자연스러운 붉은 색이 있다.

석재를 중심으로 종교적인 표현 경향을 보인다.

야자수 때문인지 무척 이국적이다.

까사 빈센스보다 더 이슬람 양식이 돋보이는 것 같다.

실제로는 신고딕 양식인데 정말 이슬람 사원의 이국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성물을 보면 가우디의 개성이 보인다.

실내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한참을 뜰에 있다가 돌아서 나오는 길.

어딘가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가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테레사 수녀원(Colegio de las Teresianas) :

주소 : Carrer de Ganduxer, 85
찾아 가는 길 : 메트로 L6, L7, S1, S2, ‘라 보나보나(La Bonavona)’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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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개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가톨릭 양식과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 양식이 혼재된 '절충주의' 시기이다.

앞서 포스팅한 까사 비센스, 그리고 아래의 구엘 별장과 구엘 궁전이 대표적이다.

먼저 핀카 구엘(Finca Guell), 구엘의 별장이란 뜻이다. (1884~1887)

여기엔 입구 장식이 정말 대단하다. 무려 용이다!

가우디가 구엘을 위해 만든 최초의 건축물이다.

붉은 색이 주로 보이고, 부분적으로 녹색과 황색이 있다.

벽돌과 타일 등을 주로 사용하였고 철재 대문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무데하르 양식을 많이 느낄 수 있으며 강한 장식성으로 연출하였다.

(무데하르 양식은 앞서 얘기한대로 가톨릭+이슬람 양식을 뜻한다.)





이 철재로 된 대문...

정말 용이다.

용의 머리를 보면 용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가우디는 재료의 물성을 잘 이용하여 다채롭게 사용한 '표현주의' 작가이기도 하다.

철재면 철재, 사암이면 사암, 타일이면 타일...

들어가진 못하고 이 주변을 살펴 보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

벽면은 나중에 그라나다와 꼬르도바에서 보았던 이슬람 사원의 문양같기도 하다.

벽의 윗면.. 그러니까 지붕 부분, 건물의 상단도 굉장히 독특하다.

까사 밀라의 옥상에 있는 초현실적인 조형물 느낌도 든다.

전체적인 모습.

용을 붙잡고 있는 기둥도 인상적이다.

확실히 초기작들은 화려하다. 곡선보다는 직선이 더 주를 이루고 있다.

구엘 별장

주소 : Avinguda de Pedralbes, 7

찾아가는 방법: 메트로 L3, 마리아 크리스티나 역에서 도보 5~7분.

다음은 <구엘 궁전(Palacio Guell)>(1886~1889)

팔라우 구엘이다.

까사 빈센스나 구엘 별장보다는 무채색의 경향을 보인다.

석재를 중심으로 장식적 철재를 사용하였다.

주변 환경에 맞춰 구조물에서의 독창성보다 부분적인 장식성에서 형태의 특이성을 보인다.

처음에 이 건물을 보고서는 가우디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경직되고 차갑다.

아마 구엘의 저택으로 쓰인 것이니만큼 그의 사교적 위상을 고려했을 것이다.

거미의 형상을 한 것 같은 저 철재 조형물 위를 보면 새 한마리가 있다.

이 새는 '불사조'를 상징한다.

카탈루니아 지역의 번성과 영흥을 소망한 것이다.

이렇게 초기 작품들은 철재나 여러 재료들의 물성을 드러내 장식성이 강한데, 이는 당시 주류를 이루던 '아르누보' 사조에 따른 것이다.

아르누보는 '장식성', '곡선' 등을 강조한 사조이다.

가우디는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하였다.

구엘의 헌신적인 지지와 믿음을 기반으로 자신의 건축물을 상상이 아닌, 현실에 구현해낸다.

이후 제2기부터는 가톨릭의 고딕과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담긴 카탈루니아 자연에 대한 상징,

그리고 합리적인 것을 강조한 구조주의적인 건축 등의 철학이 융합되어

가우디만의 건축물이 꽃을 피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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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비센스(Casa Vicens)는 '비센스의 집'이라는 뜻으로 가우디가 처음으로 건축한 건물이다.

관련 정보를 하나 옮겨 본다.

까사 비센스

" 까사 비센스는 타일공장 사장인 비센스가 신인 건축가 가우디에게 부탁한 주택이다.

가우디는 유행을 고려해 의뢰인에게 집을 지어주었다.

당시 스페인은 기독교, 이슬람의 복합적 예술인 무데하르 양식이 유행을 선도했다.

가우디는 이슬람 사원의 분위기를 내고자 건물에 탑과 망루를 설치하고, 도자기 타일을 외벽에 붙였다.

주로 단색 타일과 노란 꽃무늬 타일을 사용했다.

꽃무늬 타일은 집이 들어서기 전에 부지를 뒤덮고 있던 노란 꽃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가우디는 의뢰인 비센스 덕분에 걱정 없이 타일을 쓸 수 있었다.

가우디가 얼마나 많이 썼던지, 집이 완공된 후에 회사는 부도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경력이 늘수록 건축물에 곡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곡선이 자연의 바탕이고, 직선은 인간이 만드는 산물이라 생각했다.

데뷔 작품인 까사 비센스에는 직선이 주로 이용되었다."

(출처 : http://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02 )

개인 주택이어서 실내를 볼 수는 없었다.

5월 22일인가 축제날에 하루 개방한다고 한다.

가우디를 떠올리노라면 연상되는 성 가족 성당이나 까사 밀레 같은 건물의 '곡선'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스페인이 아랍의 영향권에 있었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아랍 양식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우디 건물들을 보고 다니다보면 그가 검정색의 철제를 즐겨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참 이쁘다.

여느 건물처럼 길을 따라 사람들이 드나든다.

타일 하나는 정말 많이 썼네

무척 튀는 건물인데도 길 전체로 보니 개성으로만 느껴진다.

철제 구조물 안의 노란색 꽃은 금잔화이다.

건축 부지에 피어 있던 금잔화를 타일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사진 속의 할머니 위에 있는 원형의 철제 구조물은 원래 야자수가 있던 자리에 건물을 세우느라,

가우디가 야자수를 베어버린 것이 아쉬워서 저렇게 야자수를 형상화했단다.

금잔화 타일

이쁜 곳이다.

처녀작이라 그런지 아직 전성기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개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까사 비센스를 찾아 가는 길은

메트로 '폰타나(fontana)'역에서 걸어가면 된다. 약 5분 남짓 걸으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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