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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정처 없이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은 어떤 도취감에 휩싸인다. 한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걷는 것 자체가 점점 더 큰 추력을 얻게 된다. 그에 반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상점, 자그마한 바나 웃음을 던지는 여자들의 유혹의 힘은 점점 더 작아지며, 다음 골목, 저 멀리 으슥하게 우거진 나뭇잎들, 어떤 거리의 이름 등의 자력에는 점점 더 저항하기 힘들게 된다.

곧 배가 고파온다. 그러나 허기를 가라앉힐 수 있는 수백 가지의 가능성이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금욕적인 동물처럼 그는 미지의 구역을 배회하다가 결국 지칠 대로 지쳐 자기 방으로, 그의 방이지만 왠지 서먹서먹하고 그를 차갑게 맞이하는 방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에 빠진다.

 

-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중에서

 

 

오늘 집에 와서 흰 쌀밥에 달래 간장과 갓 구운 조선김을 먹었는데 두 공기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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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온 소고기로 장조림, 로스구이, 불고기, 불고기 전골 등을 잘 먹었다.

(참고 http://sixtyone.textcube.com/784 )

그리고 조금씩 남긴 것들과 그 고기가 양이 충분해 그 동안 장 볼 걱정 없이 지냈다.

이것 저것 해 먹은 이야기들.

 

 

샤브샤브

조기, 갈치로 만들었다는 어묵으로 오뎅을 함께 해 먹었다.

 

샤브샤브 국물은 항상 멸치, 무, 대파의 흰 부분, 다시마로 낸 기본 다시에 가츠오부시와 간장으로 맛을 낸다. 기본 다시내는 것은 http://sixtyone.textcube.com/753 )

샤브샤브에 찍어 먹는 소스는 두 가지로 마련하는데

1) 간장+와사비+샤브국물

2) 일본에서 나온 참깨소스 http://sixtyone.textcube.com/154 이게 제일 맛있다.

 

 

 

 

함박 스테이크

 

http://www.82cook.com/zb41/zboard.php?id=kit&page=1&sn1=&divpage=7&sn=off&ss=on&sc=on&keyword=함박&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3706

 

이 게시물을 보고 한 번 해 먹어야지 했던 것.

갈아서 양파와 함께 치대서 잘 먹었다.

왼쪽 사진은 소스가 없어서 퍼석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씹으면 육즙이 쑤욱-

소스는 대충 굴소스, 간장, 물엿 등등으로 흉내만 내었다.

감자는 오븐이 없어서 반 정도 익을 정도로 물에 데쳤다가 후라이팬에 후추, 소금 뿌려 구웠다.

(이거 별미더라.)

그리고 장 볼 때 늘 사는 버섯과 양파를 곁들였다.

 

 

 

 

 

땀 쭉 빼는 육개장

 

사태살을 파 흰 부분과 무 조금 넣고 푹 끓이니 정말 맛있었다. (센 불에 30분, 약한 불에 20분 정도)

사태 육수가 끓는 동안 고사리 데치고 숙주 정말 살짝 데치고, 느타리 버섯 잘 찢어서

이 셋에 고추가루, 다진마늘, 후추, 국간장 등의 양념에 잘 재어놓는다. (30분)

그리고 고추기름에 이 나물들을 30초 쯤 볶다가 마련된 사태 육수 부어주고 뭉근하게 끓였다.

 (고기 300g 정도의 분량에 물 6리터, 숙주 300g, 고사리는 150g 정도 했다.

그리고 고추가루 4스푼 듬뿍으로 기본 맛을 잡으니,

고추를 넣지 않아도 칼칼하게 맛있었다.

물은 사태가 끓는 동안 조금 졸아든다.)

 

처음하는 육개장이었지만 닭개장 하는 식으로 하면 되겠다 싶어서 했는데 잘 되었다.

시원하기로는 닭개장이 더 시원하고, 얼큰하고 뜨거운 국밥의 느낌은 육개장이 더 낫다.

 

오늘 나가기 전에도 한 그릇 밥 말아 먹고, 아직 한 그릇 분량이 남았다. 잇힝~

 

 

 

 

 

육개장 하면서 산 숙주를 데쳐서 소금 조금 넣고, 참기름 살짝해서 무쳐 먹었다.

소고기 요리는 아니지만 어쨋든 여기 껴줘 본다.

나에겐 소고기보다 좋은 숙주~!

 

 

 

 

 

카레와 카레우동

 

소고기 살을 식용유에 달달달달 거의 다 익을 때 까지 볶고

(소고기는 찬물에 30분 이상 놔둬서 핏물을 빼는 것이 냄새가 없어서, 소고기 요리에선 가장 중요한 것 같음.)

양파, 감자, 당근을 넣고 볶는다.

 

그 소고기 맛이 흘러 나온 식용유에 양파를 볶으면 카레맛이 정말 좋아진다.

 

90%쯤 채소가 익으면 물을 좀 넉넉하게 넣고 한 번 끓인다.

끓고 나면 약한 불로 20분 정도 그냥 계속 끓게 놔둔다.

그러면 구수한 스프같이 정말 맛있는 카레 베이스가 완성.

여기에 카레 가루를 물에 풀어서 섞고, 또 한 10분 약한 불에서 끓임.

(양파는 거의 녹아서 보이지도 않는다. 약하게 식감으로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먹는다.

채소와 카레, 고기 육수가 밤새 잘 스며들고 어우러져서 확실히 시간을 좀 들인 후에 먹는 것이 맛있다.

약한 불에서 오래 끓일 수록 또 풍미가 살고.

그래서 늘 전 날 밤에 카레를 해 둔다.

 

먹다가 남은 카레 1인분에 가츠오부시 국물을 넣고 우동 사리를 넣으면~!

정말 속 풀리는 카레 우동이 된다.

일본 친구들이 자주 해 줘서 정말 좋아하는 것이었는데

시중에서 카레 우동을 시키면 걸죽한 카레에 밥 대신 우동 면만 나온다.

간은 간장으로 맞춘다.

 

 

 

 

하이라이스

 

카레 가루를 사면서 눈에 띄여 산 하이라이스.

어릴 때 엄마가 해 주면 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좋았었다.

크고선 못 먹었단 생각이 들어서 해 봤다.

백세카레에 비해선 조금 느끼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좋다.

한 번 저렇게 먹고,

케찹을 듬뿍 넣고 (혹은 토마토를 넣고) 먹으면 또 별미다.

 

 

 

 

마지막으로 잡채

 

소고기 사태살을 연필 굵기로 썰어서 목이버섯(지난 번에 누룽지탕하면서 사둔 것이 있었다)과

완소 시금치, 느타리 버섯

그리고 당근과 양파를 넣고 조물조물 비벼주는 잡채-

한그득해서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들어앉아 있다.

밥 맛 없을 땐 잡채 꺼내서 물에 굴소스, 녹말가루 풀어서 잡채밥 해 묵을거당.

잡채를 워낙 좋아해서 조금 삼삼하게 했다.

간장은 몽고 순간장. 이거 좋다.

 

그리고 소고기 국거리로 미역국도 참 잘 해 먹었고,

이제 국 한 번 할 양이 남았는데 그걸론 육개장 한다고 산 무와 함께 내일 쯤 소고기 무국 해 먹어야 겠다.

그나저나 어제는 순대를 먹었는데 그만 체해버렸다.

그래서 내가 정말 진지하게... "한 달 넘게 소고기를 먹고 있다보니 이제 돼지고기는 안되나봐"

라며 헛소리를 했다. (..)

 

추석 때 이런 먹을거리를 선물해준 님하께 정말 감사하며 먹었당.

(다시 달라스 쪽을 향해 삼배;;)

서울 오시면 맛있는 거 대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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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동네 수퍼에 갔더니 무청 데친 것을 무려 두 덩이-1,000원에 팔고 있었다.

보드라운 무청을 햇볕에 말려서 데친, 그 무시래기는 아니었지만 모양만큼은 얼추 같아서

이것은 엄마가 끓여주던 무시래기다 하면서 먹었다.

두 끼를 이것으로만 먹었다.

 

보드라운 무시래기였으면 그냥 된장에 지져서 밥에 척척 걸쳐서 뚝딱 먹었을텐데.. 무청이라 질겼다.

그래도 웬 횡재냐 하면서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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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해운대에 앉아서

"여긴 정말 내 애인같아" 라고 했더니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뭐시라꼬 내 마누라다"라고 해서 한 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는 이 해변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가서

웨스틴 조선 옆으로 동백섬까지 잘 꾸며놨다는 APEC 누리마루를 가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반대로, 미포 쪽으로 달맞이 쪽으로 가게 되더라.

매번 갔던 곳이고 늘 머무르던 곳으로 저절로 발이 옮겨졌다.

마음 한 켠에 해운대를 여행지가 아니라, 집같은 곳으로 여겼던 것 같다.

 

 

 

깡통시장, 국제시장 분들이 밥을 먹으로 많이 다니시는 부평동.

바로 옆 골목이다.

군산도 그렇고 강점기 시절 도시의 모습을 갖춘 곳들은 모두

반듯반듯하게 네모형태로 골목들의 구획이 잘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지그재그로 다녀도 방향만 맞으면 금세 목적지로 간다.

깡통, 국제시장 골목에서 한 블록 옆으로 오면 이런저런 식당들이 꽤 많은데,

다들 평균은 하니까 망하지 않고 오래 버티나 싶다.

그 중에서도 일요일, 월요일 통틀어 그 골목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연근해 식당.

생대구탕도 잘 하고 대충 여러 가지를 준수하게 잘 뽑아내는 식당이라고 소문이 났다.

여행 이틑날 생선구이가 먹고 싶어서 부평동 일대를 좀 걸어보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남포동 데파트.

즉 부평동까지 오려면 빠짝 15분은 걸어야 하는 곳이다.

남포동 일대를 돌아다녀도 생선구이집이 보이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근해로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동행은 "연근해로 가 보자"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바다 근처로 가자"로 듣고서

"도저히 자갈치 시장에선 생선구이집이 없을 것 같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

나는 계속 연근해로 가자고 하고,

동행은 연근해 대신 남포동 안 쪽을 살피자로 옥신각신.

그러다가 장장 1시간을 자갈치, 부평동 연근해 식당 딱 앞 골목까지, 그리고 중앙동, 남포동을 헤맸다.

나는 발가락에 피가 나고, 동행은 무거운 짐을 다 들고 다니느라 어깨죽지가 뻐근.

말도 없이 의사소통 부재로 (..)

결국 차이나타운에서 물만두와 볶음밥으로 간신히 요기를 하고 기차에 올랐는데

오르기 전까지 나는 나대로 화가 나 있고,

배가 고픈 동행은 동행대로 배가 고파서 기운 없는 상태고,

나중에 원인을 찾다가 연근해에서 어긋난 것을 알고 허탈해 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나 역시, 공책에 '생선구이-부평동 유성실비. 구포집 앞' 이렇게 적어 둔 것을 나중에야 발견.

으이고 천지먹통 둘이서 여행가니 사고는 이상한 구석에서 터지고.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던 변기 (..)

부산에 걸어 다니면서 이대호도 많이 보고,

한 아가씨가 옷입는 걸 잊었는지 웃 옷만 입고, 하의는 스타킹만 신은채로 활보하는 것도 봤..

건물 옥상에 지어놓은 집도 봤지만

인상적이었던 변기

 

 

한 접시(2인분)에 2만원인 백화 양곱창.

결국 한 그릇 더 먹었다.

생고기는 이렇게 맛있었구나 으헝헝

냄새 풀풀 풍기면서 지하철타고 나당겼다.

 

 

봐도 봐도 좋은 해운대 사진

경포대도, 서해 바다도, 통영 바다도 좋지만 해운대는 뭐랄까 굉장히 안정적이다.

 

 

여러가지 시설들로 점점 더 꾸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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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가 동대구 부터는 기존의 철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부산까지 가는 차창 밖 풍경이 좋다.

가을이고 날씨가 좋아서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낙동강 하류 쯤 들어오면 큰 강과 바다가 만나기 때문에 물길이 넓어지고 물이 천천히 흐른다.

마치 산들이 물 곁에 조심스럽게 붙어 있는 모양이 나온다.

순간 이런 우아한 모양새를 파엎어 4대강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다 아프다.

한강식 시민공원은 한강에 어울리고,

양재천식 지방하천 사업은 거기에 제격인 것인데

이 큰 강의 흐름을 제 아무리 뛰어난 디자인일지라도 '가공'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라는 글귀가 고스란히 전해오는 곳이

우리 강산이다.

섬진강은 섬진강대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구둑을 얼마나 높일 셈인지는 몰라도

부디 기차길 옆으로 지나는 풍경으로 하루둑의 시멘트만 보이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부산역에 도착해서 보이는 바다 풍경은

한가한 바다가 아닌 산업의 모습이다.

그래서 신선하기도 하고 그렇다.

중앙동을 지나 남포동 쪽으로 가는 길에서도 '부두'라는 안내판도 생소하고.

여기 바다를 타면 해외로 가는구나, 라는 사소한 사실도 꽤 부럽다.

 

 

용두산 공원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도 있건마는

뒷길로 낑낑 거리며 올랐다.

자갈치 시장 앞에 큰 건물이 올라와서 자갈치 시장과 바다가 한 눈에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남포동 서울깍두기에서 아침을 먹고,

깡통시장, 국제시장을 지나 보수동을 갔다.

이 골목을 따라 길 끝의 임시수도 기념관을 가 볼 생각.

 

 

예전에 국제시장에서 헤매다가 들러 본 기억이 나는데,

다큐 3일에 방영된 이후로 출사지가 된 보수동 책방 골목.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건 사람들 뿐이다 싶다.

이럴 땐 견고하고 완고해서 여간해선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경상도의 소심함이 뚝심으로 보이는 순간.

 

 

 

부산의 구도심들은 참 가파르다.

 

 

오늘은 문을 닫은 모양

 

 

어휴 귀여워라

 

 

돌고 돌아 드디어 당도

탄성이 나오는 건물.

보존도 잘 해 두었고 건물 주변도 공원처럼 잘 꾸며 두었다.

 

 

날이 좋아 바깥에 좀 앉아 있으니 졸음이 쏟아진다

전쟁 중에 이런 곳에서 임시수도 행정을 했다니.

 

 

건물 풍경

 

 

양식과 한식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어서 그저 나도 이런 집 한채 지어야지 하는 마음 뿐

누구나 이런 집 한 채 쯤 짓고 살잖아요 (..)

 

 

학예사가 어찌나 관리를 잘했는지

문칸, 창틀 마다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더라

 

 

이 곳으로 지나면 건물 후원이 나오는데

후원이 참 이쁘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주 사람들을 불러 식사도 했단다.


 

 

 

 

 

한 바퀴 도는 동안 의자도 많고 쉴 곳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감탄했던 프란체스코 여사의 주방 모습

검소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멋이 있어서 반했다.

싱크 뒤는 무조건 창이 있어야!

그리고 가능하다면 싱크 위 선반은 없는 것이 가사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 같음.

 

 

다시 내려오는 길에서 위를 보면서

얼핏 보이는 한옥 지붕 건물이 안내소이다.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충전을 부탁했는데 지키시는 분이 여간 친절하신 게 아니다.

건물 안의 안내하시는 학예사 분도 그렇고

정말 감사한다.

 

내려 오면 바로 앞에 있는 동아대 부민캠퍼스 박물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을 헐지 않고 새롭게 이용해서 상도 많이 탄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근대 건물이 거의 없는데 볼 것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다.

http://buk.daili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543

 

자갈치 시장 옆에 있는 건어물 골목이 이제 스러지기 일보 직전의 적산 가옥 지대라면

부민동은 꽤 의미가 있는 건물들이 아직 남아 있다. 기상청도 그렇고.

건어물 골목은 대학생 때 많이 다녀서 기록이나 경험이 있어서 이번 여행엔 부민동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하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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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기간이 아닌 부산은 처음이다.

나에게 부산은 뭐랄까, 가장 나였던 때를 보낸 곳이다.

그래서 늘 그립고 좋은 곳이다.

눈을 틔워준 분들을 만나던 곳이고,

어릴 때 그 분들 곁에서 깜빡 깜빡씩 졸면서 이야기를 듣고

들을 때 마다 감탄하던 곳이다.

아마 다시는 그런 사람들과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이다.

원숙하고 다정했고 위트있었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영업을 종료한 원목바닥의 술집에서 테이블을 붙여 놓고 벌어지던 새 밤의 시간.

이야기들, 단정한 목소리들, 뒤죽박죽 섞인 웃음 소리들, 차갑지 않던 배려들,

진부하지 않은 주장들, 위트들이 날아다니는 담배 냄새와 핀잔들.

자리를 옮기면 놀라운 장소에서 놀라운 음식들을 내주던 골목 식당들의 대가들.

(대가라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 묵직하고 간단한 한 접시들.)

 

시간이 흘렀다,

로는 표현이 안되는...

 

이젠 세월이 흘렀다.

나는 30대가 되었고,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는 걸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정말 그리웠었다.

너무 그립고 잡고 싶어서 daum 지도를 보면서 울 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갔다.

살살살살 걸으면서 그 때 포장마차가 있던 자리,

그 때 새벽에 주워듣던 이야기가 새 나오던 술집들,

그 이야기를 듣던 그 식당 자리를 가 보고 싶었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전화 통화라도 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그러지는 못하고 왔다.

아쉬움만 남는 여행이었다.

 

 

해운대

평일이라 한산하다

 

해운대 바다에 앉아 책도 읽고 한참을 있고 싶다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내년 가을엔 영화제 때 꼭 와야겠다.

 

늘 부산에 있을 때는 언니들이 있어서인지

파블로프의 개처럼 해운대를 가니 곳곳에서 언니들과 뭐 했던 생각만 나더라.

백반집 앞에서 괜히 안을 바라보고

(저기서 김수로 봤었는데.. 이러고;;)

달맞이 고개를 보면서

(저기서 조개구이 먹으면서 아줌마들 불친절한 걸 농담삼아 막 웃었는데 이러고;;)

뿐 아니라,

한양족발 앞을 지날 땐

'개금밀면 먹고 2차로 저녁을 또 먹으러 와선 배 불러서 서로 한숨만 쉬고 그랬지' 이런 상념에 젖었다.

 

 

 

해운대는 많이 바껴 있었다.

3년 전에 해운대 앞에 거대한 신식건물을 들어섰길래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는데,

그 건물이 이번 여행의 숙소가 되었었고

그 옆으로 마치 제 2의 센텀시티가 되려는 냥 높은 건물들이 주루룩 섰더라.

그래도 이번엔 그 덕을 많이 봤는데,

해운대 앞의 '엔젤리너스'(?) 커피숍이 바로 그 곳!

2층 테라스에 앉으면 바다가 보이고 햇살도 들어오고, 게다가 커피숍도 널직하고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다.

신분증을 맡기면 책을 빌려줘서

김연수의 신간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두어 시간 정말 편하게 쉬었다.

더 바랄 게 없는 곳이었다. 4천원이 좀 안되는 돈으로 해운대를 가장 많이 누렸던 것 같다.

(참고로 김연수의 새 책, '세상의 끝 여자친구'는 그럭저럭 평이했다.)

 

아침은 호텔 조식으로 해결하고 슬렁슬렁 걷다가

해운대구청 옆의 고은 사진 미술관은 월요일에 쉰다고 해서 못 가보고

그냥 걷다가 밀면이나 먹자 싶어서 '밀면전문점'에서 먹었다.

이번엔 교대역 앞 국제밀면을 먹으려고 했는데

뭐 먹자고 이동하고 할 상황이 안되어서 가까운 곳에서 해결.

밀면을 그냥 흡입해 버렸다.

여긴 비빔면이 좀 더 맛있는데 맛이 점점 매워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떠나던 날 미열이 있어서 아스피린을 먹고 출발했는데

여행 마지막 날 몸이 제일 안좋아져서

복국이며 아저씨 동태탕?이며 뭐며 하나도 입에 거슬려서 넘어가지가 않았다.

부산에 와서 식욕부진이라는 중병에 걸리다니 억울했다.

 

아, 그리고 붉은 수염도 3년 전 그 모습 그대로여서 으 반갑고 고마웠다.

잘 먹던 모듬 꼬치가 메뉴에 없어서 우럭구이를 먹었는데 아사히 생맥주도 맛있고

가격이며 가게 분위기도 참 좋았다.

3년 전에 무심코 '습관대로' 미나미를 갔다가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에 충격을 먹고

들른 곳이 붉은 수염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고마웠다.

2006년의 미나미는 2001, 2002년의 미나미가 아닌,

하여간 정체불명의 미친 가게가 되어 있어서 그 때 술이 정말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오뎅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었다.

그렇다고 일하는 아재를 붙잡고 "왜 그렇게 됐으요" 할 수도 없고.

암튼 붉은 수염은 잘 있었다.

 

붉은 수염은 잘 있었다.

그리운 것들, 사랑하는 것들이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때 마다

그래도 아직 세상은 날 버리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는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옷 꽁꽁 싸매고 울고 싶을 때는 해운대 바다에 앉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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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포에서 해운대 쪽으로 바라본 풍경

 

 

 

 

 

 

부평동에서 용두산 쪽을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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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익일오전특급으로 온 엄청난 한우 선물 세트.

 

 

추석 연휴 며칠 전 나는 택배 아저씨 전화에 "엽세여~ " 하고 동네 모자란 형마냥 전화를 받고,

몇 분 후 눈꼽을 떼면서 받아든 박스.

'이게 뭐지' 하면서 열었다가 나는 그야말로 떡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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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적하고 깊이가 좀 있는 그릇이 있었으면 더 폼난다!)

 

촌스럽게도 나는 중국집 메뉴 중에서 '누룽지탕'을 볼 때 마다 '누룽지 끓인 게 왜 저렇게 비싸?'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한껏 모양을 잡고 가족들에게 어깨를 세우고 싶을 때 마다 중국집엘 데려가셨다. 중국집엘 가는 동안 엄마한테 "막내 처남 집 근처로 가자. 거 인형이도 데리고 나오라고 해." 라고 하고선 꼭 같이 어울려 먹으면서 대접하고 나누는 걸 좋아하셨다.

근데 우리는 그 수 많은 세월 동안 중국집에 가서 팔보채, 유산슬, 짜장면(중에서 암튼 젤 비싼거)만 먹었었다. 그냥 그 세 개가 중국집 요리의 전부인 냥 그렇게 살았었다. :-)

왜냐하면 아빠 자신이 요리집에서 다른 것을 많이 못 드셔 보신 까닭에 팔보채, 유산슬, 그리고 짜장면이 제일 맛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탕수육 처럼 튀긴 음식은 일반 짜장면 집에서도 배달해서 시켜 먹을 수 있는 것이니 다른 좋은 걸 먹여 주신다고 늘 골라 주신 게 그것들이다. 그리고 식사로 짜장면을 시킬 때도 제일 좋은 걸 시키라고 하신다. 일반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도 하여간 젤 비싼 걸 우리가 시켜야 아빠가 좋아하셨다.

 

그래서 뭐,

나는 누룽지탕을 작년에야 처음 먹어 봤다는 그런 이야기다.

남자친구가 배달시켜 준 누룽지탕이었다.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운 것 같다. 특히 누룽지탕..-_-)

 

헉!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소스를 붓는데 '치아악~ 챠작~' 뭐 이딴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미각과 청각!

 

이것은 바로 소리없는 아우성.. 공감각적 심상 ... - _ -;

 

암튼 그 때 나는 여럿이 둘러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내색은 못했지만 엄청나게 흥분해 있었고 처음 보는 누룽지탕을 조금 겁내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얼었단 얘기) 저것이 누룽지탕의 정체였구나.. 바로 저것이! 바로 저것이 정체!!

이제야 비밀이 풀렸다. 그래서 비쌌구나.. 해삼, 새우, 오징어 등등 팔보채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 가격이었구나. 누룽지탕이란 저런 것이었군...

 

그리고 맛있더구만.

 

그 후 집에 다니러 갔을 때,

역시나 아빠는 우리를 대동하고 차에 태우고 자랑스러워하며 (가족 모두 싣고 차 운전하는 걸 좋아하신다.) 중국집으로 갔고, 막내 외숙모한테 갑작스레 전화해서 "5분 후에 도착하니까 같이 밥먹으러 가자구~ 모시러 갈테니 인형이 데리고 딱 앞에 나와 있어요~"하고 룰루 랄라..

그리고 팔보채와 유산슬을 먹고 있는데 (하여간 팔보채는 배 터지게 먹는다. 이 메뉴가 좀 식상해서 다른 것을 시켜 보려고 해도 모두들 겁이 나서 못 시켰던 것 같다 :-)

옆 테이블에서 "치지직, 챠작" 뭐 이딴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것이었다.

맛있고 흥을 돋구는 소리같이.

아빠가 물끄러미 보더니... "우리도 다음엔 저런 걸 먹어 보자"고 하셨다.

그 때 알았다.

아빠는 누룽지탕의 존재를 모르셨다는 걸.

그 때 은근히 남의 테이블을 호기심 가득히 유심히, 그리고 조금은 부러운 듯이, 또 저런 건 비싼 건가 하는 눈빛이 나에게 콱 박혔다.

 

난 누룽지탕 먹어 봤는데.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저거 배달시켜 먹기도 할 만큼 비싼 요리도 아니고 평범한 건데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훌쩍..

 

 

그 때 부터 누룽지탕이 마음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원래 내가 좀 촌스럽다)

 

담에 가면 꼭 저거 시켜먹어야지.

내가 먹어봤는데 아빠는 그런 것도 몰라..하면 자존심 상해 하실 것 같고

안 먹어 봤다고 시치미를 뚝 떼고 새로운 것을 먹자고 해야지 결심했다.

 

그러다가 요리책에 나온 누룽지탕을 보니 집에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더라.

아아

연습 좀 해서 집에 가거든 꼭 상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얼마나 이게 해 보고 싶던지.

아마 반 년은 장 보러 갈 때 마다 이 생각을 했을거다.

그런데 정작 이거 하나 하려고 재료를 산다는 게 쉽지도 않았고,

장 보러 갈 시간도 안 났었다. 그 반 년 동안.. 인터넷으로 사는 건 싫었다.

꼭 손으로 사서, 차근 차근 다 연습해 보고 아빠 엄마한테 진수성찬으로 내놓고 싶은 마음.

(누룽지탕 한 메뉴로 진수성찬이라니 -;- )

 

맘 딱 먹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하나로 마트를 들렀다.

정말 피곤해서 집으로 가서 곧장 뻗고 싶었지만 그냥 갔다.

(설마 마트에서 드러눕겠냐 하면서;;)

 

누룽지탕.

 

정말 쉽더라.

진짜 쉽다.

한식의 국, 찌개 간 맞추는 것에 비하면 어휴 거저먹기다.

고추잡채도 고추기름에 파, 마늘 센 불에 30초 볶다가 고기 넣고 반 쯤 익었을 때 피망 넣고

굴소스 한 3큰술에 양조간장 식성대로 2~3 스푼 넣으면 끝이었다.

근데도 얼마나 맛있던지!

 

누룽지탕 역시 소스는 굴소스다.

레서피는 아래.

http://www.82cook.com/zb41/zboard.php?id=note&page=3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548

 

들어가는 재료는 일단 집에 있는 것들로 하면 되겠더라.

나는 괜히 기분내본답시고 새우도 샀다.

(중간 크기로 넉넉히 샀는데도 4천원이 안되었다.)

오징어는 집에 있었고.

목이버섯도 말려둔 것과 죽순 통조림을 샀다.

(목이버섯은 3,500원 쯤 했고 죽순 통조림도 2천 얼마였던 것 같다.)

엄마가 보내주신 표고 버섯이 있어서 요긴하게 썼다.

 

누룽지는 그냥 뜨거운 물 부어먹는 일반 누룽지로 했다.

(이게 더 맛있었다. 후라이팬에 기름 조금 조금 넉넉히 둘러 튀기듯 구웠는데

소스를 부었을 때 소리가 챠~악~ 나는 것이 똑같았다.

게다가 맛이 더 고소하고 좋았다. 중국 재료상에서 찹쌀 누룽지를 사러 가는 수고는 필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두꺼운 찹쌀 누룽지는 튀겨야 하는데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튀김도 거의 안 하는데 그 기름을 버리는 것도 찝찝하고.)

 

재료를 다 손질해서 한 곳에 놔 두는 것이 쉽게, 맛있는 음식을 하는 제 1 규칙인 것 같다.

(거의 정언명법임;;)

재료를 다 손질해서 쟁반 같은데 딱 놔두고 싱크를 대강 정리. 음식물 쓰레기도 모아두고.

 

나는 이상하게... 음식한다고 오직 그 음식을 완성하는 데만 온 관심을 쏟곤 했었다.

그리고 그걸 상에 올려서 먹으면서... 계속 남은 부엌일을 어서 빨리 마쳐야 한다고 조바심을 냈다.

즉 <재료 준비-요리-식사-설겆이 등 뒷정리>를 다 해야 100%인데,

그 중간에 식사를 하고 있으니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전전긍긍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했다.

 

이제는 그래서 <재료 준비-싱크 한 번 정리-요리-식사>가 100%이다.

싱크가 정리되어 있으니까 식사 후에도 밥공기와 접시 하나, 국그릇 뿐이다.

그래서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식사도 더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 암튼 재료를 준비해 두고

2. 아주 살짝 매콤한 맛이 도는 누룽지탕을 하려고 (굴소스가 msg 덩어리라 좀 느끼하다)

    고추기름에 마늘, 파를 센 불에서 30초 정도 볶다가

3. 채소류 넣고 1분 볶는다.

4. 해산물 넣고 볶는다. (오징어나 해산물은 조금만 많이 익혀도 질겨지기 때문에 채소 다음에)

5. 그리고 굴소스 1, 간장 1, 소금 쬐금, 후추, 청주 넣고 마지막으로 참기름 살짝 넣고 볶는다. (후다닥)

6. 이제 물(닭육수, 치킨스톡) 한 컵에 녹말가루 3스푼 정도 넣고 잘 흔들어서 그 위에 붓는다.

그럼 끝이다.

이거 약한 불로 해 두고 후라이팬에 누룽지를 구워서 (누룽지 튀겨 설탕뿌려 먹던 간식이 떠올랐음)

사기 그릇 같은 거에 담아서 상에 올려둠.

그리고 누룽지탕의 가장 큰 재미인 치지직 소리를 내기 위해 소스들을 따로 들고와서

상 위에서 합체!

(온도는 계속 뜨거운 정도로 맞춰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식으면 안됨)

 

맛있게 먹었다.

싹 비웠다.

마음도 개운하다.

누룽지탕은 나에게 각별한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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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레서피

http://blog.daum.net/engineer66/339661

 

응용 레서피

http://www.82cook.com/zb41/zboard.php?id=kit&page=1&sn1=&divpage=7&sn=on&ss=off&sc=off&keyword=둥이맘&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2941

 

추어탕을 좋아하는데 시중에서 사 먹는 것은

간이 너무 세거나 아니면 너무 짜서 먹고 나면 늘 더부룩했었다.

그리고 서울은 사 먹는 게 너무 비싸서.. 맛도 없고 짜고 속만 불편한데 만 원 돈 나가니

이럴 때 돈이 참 아깝다.

맛있는 걸 먹을 땐 전혀 안 아까운데 '으 저걸 먹으라고 주다니'하면서 계산할 땐 부글부글 (..)

그렇다고 미꾸라지를 사서 갈아서 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왜냐하면 믹서기가 없기 때문이다.

(있었다면 해 먹어 봤을 듯 흐흐흐.. 실제로 되나 안되나 이런 호기심 때문에;;

아마 미꾸라지도 국산 찾으려고 엄청 의욕적으로 팔 걷어 부치고도 남을 호기심)

 

그러던 차에 고등어로 추어탕을 한 것이 맛있다는 걸 어디서 듣고

이리저리 검색을 해 봤더니 딱 있더라.

엔지니어님이 생물 고등어로 육개장을 끓였고,

82의 둥이맘님이 통조림으로 해 보셨는데 굉장히 맛있다고해서 해 보기로 결심했다.

 

하는 과정이야 어렵지 않지만

실패해서 이상한 맛이 날까봐 늘 조마한 마음이 든다. (소심)

음식이란 것이 참... 소금 쬐금 더 넣었는데 풍미가 확 살고,

'이것도 비슷한 거니 넣어볼까?' 해서 넣으면 괴상한 맛이 되기도 하고...

하여간 낭패를 본 경험이 많아서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검색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른다. (구글, 다음, 네이버... 검ㅋ색ㅋ)

요리책도 다 찾아보고.. 읽고 또 읽고..

(교과서 세 번 보면 백 점이라는 걸 아직도 맹신하는건지 원;; 정말 삼 세 번은 보는 것 같다 흑)

그러다보니 막상 재료 늘어 놓고 가스불 앞에 서면 레서피가 그냥 머리 속에 들어와 있더라.

만약 성공하면 그땐 정말 내 레서피가 된다.

 

암튼

하나로마트에서 데쳐서 파는 배추 우거지를 (한 두 줌 되는 양) 2,500원 주고 샀다.

데쳐서 파는 우거지에서 걸레 냄새 같은 게 잘 난다고해서

물에 담궈서 여러 번 헹궜다. 언뜻 냄새를 맡아보니 그냥 우거지 냄새다.

우리 집에서 늘 맡던~

(우리집은 무 시래기와 배추 우거지로 365일 밥을 해 먹는;;; 광신도;;)

* 참고로 '시래기'는 꽁다리나 버리는 잎을 말린 것. '우거지'는 그냥 멀쩡한 잎을 말린 것.

우리집 베란다에는 언제나 무청 말린 시래기가 살고 있다.

그냥 거저 얻거나 사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울에선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내가 잘 말릴 줄도 모르고..

그래서 하나로마트에서 데쳐서 파는 무 시래기나 배추 우거지를 구입하는 게 가장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연히 여기까지의 결론을 위해서 엄청 검색;; 질문;; 며칠을 탐색했...시래기 근성  - _-)

 

냄비에 물을 한... 1리터 넣은 것 같다. (대충해서;;)

어제 밤에 다시마 좀 넣고 멸치 넣고 잤다.

일어나서 다시마 건지고 멸치 다시를 우려내기 위해서 물을 끓였다.

끓는 동안

우거지를 먹기 좋게 듬성듬성 칼로 잘라서 양푼같은 데 넣고

국간장 2숟가락(없어서 까나리 액젓으로 했다), 고추가루 3스푼, 된장 1 숟가락 듬뿍, 마늘 2 숟가락

이렇게 넣고 무쳐 두었다.

 

물이 끓어서 멸치를 건져내고

고등어 통조림을 땄다.

근데 통조림 국물도 넣어야 하는지가 아리송했다.

그냥 넣어 버렸다. 통조림 고등어니까.. 왠지 국물이 안 우러나올 것 같아서;;;

(소감: 괜츈함. 넣길 잘한 것 같음. 근데 좀 짠 경향이 있으니 반 정도만 넣으면 좋겠음)

 

고등어는 숟가락으로 푹푹 쑤셔서 (꺅 잔인해) 가루로 만들고;

(고등어 덩어리와 추어탕은 어울리지 않아! 이런 마음)

물이 끓자 양념에 무쳐둔 우거지를 넣었다.

그리고 청양고추 1개 썰어 넣고.

 

그리고 한 10분 뭉근하게 끓였음.

아아.. 맛있을까 어떨까.. 궁금해 하면서 간을 봤는데!

 

 

헉!

 

맛있다...

 

 

간이 안 맞고 싱거우면 소금을 넣으려고 소금통도 꺼내놨는데 그냥 철수.

아아... 나 이제 정말 요리에 눈을 떴나봐 (-_-)

으헝 정말 맛있었다. 굉장히 깔끔하고 고소한 맛.

그래도 생선인데 청주나 미림 이런 거 안 넣어도 되나.. 고민했는데 된장이 냄새 다 잡아 주고

우거지랑 어우러져서 아 정말 속이 다 풀리는 맛.

비린내는 커녕 정말 담백하고 맑은 국이 되었다.

고등어 육수가 이렇다니...

 

담엔 생물 고등어로 해 봐야지.

들깨 가루가 있었는데 까 먹고 못 넣었다.

좀따 저녁에 먹을 땐 넣어 봐야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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