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 그렇지만 나는 삶에서 일정한 무언가를 닻처럼 내리고 있다. 그걸 방향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자의 직관이라고 해도 된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나는 기초 위에 서 있고, 더이상 나아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내 삶을 아주 잘 꾸려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절대 공간을, 적어도 한번에 한 손가락으로라도 붙들고 있다.

-피터 회, 스밀라 눈에 대한 감각(sense of snow) 중에서


■ 수지는 지방 검사보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요한 단어를 수첩에 적는다. 통역을 할 때는 아무리 문장이 길더라도 모든 단어를 정확히 옮겨야 하다. 통역사는 수학자하고 비슷하다. 그녀는 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언어를 대한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동의어와 맞추어야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정답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수지는 예전부터 이런 방면에 소질이 있었다. 두 가지 언어를 쓰면서 자란 환경 때문은 아니었다. 이민자 자식들이라고 해서 다들 통역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수지는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그녀는 단어를 들으면 사전적인 의미와 함축적인 의미를 분리한다. 직역은 오역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언어는 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통역사는 단어를 그대로 옮기면서도 이쪽 언어와 저쪽 언어 사이의 간격을 교묘히 메울 줄 알아야 한다.

-수지 킴, 통역사 중에서


■ 천성적인 활달함, 환경에 단련된 강인함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 있었다.
...

믿음직스러운 활기

...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어떻게 하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좀더 흐트러졌으면 좋겠다."
...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난 처음부터 출발이 늦었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타인을 원망하거나 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하는 이 나른한 성격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온다 리쿠, 밤의 피크닉 중에서

■"제가 만난 사람 중 감정적으로 가장 강한 사람이에요. 지미에게 의지할 수 있어요. 문제와 정면 대결하는 사람이니까요."

...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성취한 것이 있다면 직관의 미묘한 성장 또는 퇴화일 것이다.

...

하지만 크리스티는 이기는 걸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단 말이야. 얘는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게 더 근사하다고 생각했다니까.

...

언제나 주의 기도가 가장 마음에 든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어쨋든 모든 축복과 서약의 말들을 읽고 나니 감동이 왔다. 그 말들은 수분이 구름 속에 모이듯 내 맘을 채우고 나를 대단히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예수의 신비가 내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차라리 익숙한 말들에 대한 단순한 향수에 가깝다. 하지만 이러한 문구들이 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기도문의 활자들이 종이에서 떨어져 나와 내 삶의 이질적인 순간들 사이를 메워주는 듯했다.

-에단 호크, 웬즈데이 중에서

■ 그때의 난 얘깃거리를 찾기 위해 매일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썰렁'해지는게 무서워서 보트에 새어들어 오는 차가운 침묵의 물을, 별 볼일 없는 일상의 보고로 막아내는데 필사적이었다. 손가락의 어디를 다쳤다, 어제 본 텔레비전이 재미있었다, 아침에 금붕어가 죽었다... 하루에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해도 모자라서 침묵의 물은 다시 졸졸졸 스며들어 온다.

-와타야 리사,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중에서

■ 1880년대에 흉측한 털보들은 자신들이 지식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확신했다. 전기와 진화론의 시대가 왔고 그들은 우주의 실마리를 풀 열쇠를 쥔 듯했다. 그들의 이성은 그 무엇도 미지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확신했다. 그 점에서는 사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결국 두 집단 사이에 분쟁을 촉발했다. 오늘날에도 털보들의 추종자들이 실험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던 이성적 확신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리고 허무에 의해 안으로부터 갉아먹히고 있는 교회는 마치 닭장 한구석에 모이는 병든 닭들처럼 끼리끼리 모이고 있다. 교회 통합 운동이 생긴 것은 관용 때문이 아니라 불안감 때문이다. 종교가 르네상스를 맞은 것이 아니라 백혈병에 걸린 상태인 것이다. 이성에도 비이성에도 의지할 길 없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목발을 빼앗긴 불구자처럼 비틀거린다.

-르네 바르자벨, 야수의 허기(La Faim Du Tigre) 중에서

 

'밑줄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밑줄, <통역사> 수키 김  (0) 2006.09.27
깊은 상처  (0) 2006.09.12
말하는 책  (0) 2006.06.26
왕국유의 詩절 세 개  (2) 2006.05.21
그녀의 형.  (3) 2005.09.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