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회하지 않아>를 보았다.
그냥 극장 근처를 지나가던 참이었고, 때마침 시간도 있었고, 돈도 있었다.  그래서 극장엘 가긴 갔는데, 통 보고 싶은 영화가 없는거다.  그래도 극장까지 올라 온 게 아까워서 봤다.  동성애자에 대한 이슈를 <엄정한 인권의 논리 언어로 읽는 게 싫어서> 드라마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했다.  보는 동안 의도한 수확이 엄청나게 컸다.  남-여의 구도 대신 '동성'의 사랑 구도에는 관습적 권력 관계가 없더라는 것. 권력 관계가 있다면 돈이 있고 없고 뿐.
보통 돈이 많은 남자가 돈이 없는 여자에게 하는 PC한 행동, 돈이 많은 여자가 돈이 없는 남자에게 하는 PC한 상황들이 관습적으로 덕지덕지 붙게 되는데, 또 붙어서 극을 관람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는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내가 머리가 아닌-심장으로 눈치 챌 부분이 있었다.
신선했다.
그리고 막 나도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의도치 않았던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상황을 맞았다. 한국에서 퀴어 영화를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이, 오는 사람들을 의식하고-의식되는 상황을 겪게 되었다.
아.
쿵쾅- 하고 그 상황이 내게 왔을 때, 알게 되었다.
게이 커플들, 레즈비언 커플들이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사는 일상은 이런 일상이구나. 아니 적어도 내가 속편하게 살아 재끼는 일상에서, 불공평하게 받아야 하는 시선의 횟수가 절대적으로 많구나.

태도에 있어서 역지사지가 되지 않는다면 역시 경험을 해야한다.
자, 이것은 소수자에 대한 거만한 주류가 알량하게 하는 동정인가. 연민인가. 내 기만적인 싸구려 이해 행위인가.
그렇게 보여도 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의 틀 안에서, 내가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행위의 틀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은 내가 '쉬지 않는 한' 움직이고, 진보한다 아름답게.
마음이 한 길에서 다른 한 길로 흐르는 거, 가는 거, 거기에 '자격'이 있을까.
가짜는 스스로 표독해져서 얕아져서 어느 순간 말라 버릴 것이고, 가짜가 말라버리던 말건 내가 바짝바짝 말라버리지 않게 경계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일거다.
진심이라고 믿는 순간, 돌아보면 또 가짜가 되 버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가짜가 안 되도록 '내 생각이 정말 내 생각인지 곰곰곰 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내가 개신교도여서, 스트레이트여서 동성애 저변 지변에 대해 마음 가는 걸 막을 '자격'은 또 누가 부여하는 것일까. 섬처럼 갇힌 남한 사회가 주는 극악한 악다구니 속에서, 열등감을 못 벗고 서로 서로 자격부여 갉아먹기 싸움하는 것- 싸우다 보면 왜 싸우는지도 모를 싸움 -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데.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러 가서, 그 영화가 왜 상영하기까지 힘들었고-상영되고 나서도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배우들이 감독들이 그 영화를 아꼈는지-그런 이상한 외적 상황에 대해 더 많은 울림을 받고 왔다. 난 보통 작품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말하지 못한 작품들을 '못난 변명'이라고 생각해 오곤 했었는데.
무튼, 미워할 수 없는 영화였다. 약았어!

2.
<우리학교>를 보는 내내 화가 났다가 눈물이 났다가 했다.
화가 났던 이유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조급함 때문이었다.
재일 조선인들이 다들 저렇게 밝기만 하고 그들의 세계 속에서 '착한 고민'만 하고 살거라고 생각하면 어쩌나,여서.
그런데 지금 다시 또 떠올려 보면 감독님이 고맙다. 할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데 그 물음을 우리에게 양보해 주어서, 그 여지를 우리에게 '믿고' 남겨 주어서 고맙다. 좋은 영화였다.
지금도 이 영화 기사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http://www.cine21.com/Index/magazine.php?mm=005001001&pageNo=3&mag_id=42494
http://www.cine21.com/Index/magazine.php?mm=005001001&pageNo=3&mag_id=4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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