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나는 영화 ‘연가시’, ‘감기’, ‘해운대’를 무척이나 재미나게 보았다. 이 영화들이 주는 긴장감도 매우 즐겼고, 긴장감에 따라 가슴 졸이고 안도하며 다급해 했다. 또 남들은 ‘신파’라는 이름으로 비웃는 여러 장치들에 그저 마음이 열려서 펑펑 울었다. 영화를 본 뒤에도 ‘내 가족이 지금 평안하고 안전하니 얼마나 다행인가’하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나는 장르 영화의 공식을 있는 그대로 신봉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좋아한다.

그런데 영화 판도라는 도무지 좋지가 않다.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영화 시작 5~10분이 흐른 뒤 우리 모친은 내게 “이 영화 배경이 80년대냐?”라고 물었다. 이 영화가 무시대적인 영화가 아닌 이상 이 말은 ‘언제적 영화길래 이토록 촌스럽냐’는 말이다. 대사가 이어지는 호흡, 인물들의 급격한 감정 변화는 마치 서너 개의 영화를 이어 붙인 것처럼 이상했다. 클라이막스가 대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영화는 난장판이었는데, 이는 영화를 매우 평면적으로 보이게 했다. 예능조차 이토록 평면적으로 편집을 하지 않는 세상인데...

게다가 주인공들은 늘 고함을 질러대며 알 수 없는 사투리를 하는 통에 마치 흑백티비 시절의 선전영화같았다. 가뜩이나 원전반대라는 메시지가 뚜렷한 영화다보니 이 점은 더더욱 부각되었다.

120분의 지뢰밭 사이에서 안도감을 느끼던 순간은 김영애 씨가 등장하던 장면들뿐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