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는 여자주인공 동백과 남자주인공 용식의 러브스토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동백의 성장 동화이다.
34세인 동백이 성장을 하지 못한 이유는 고아로 자라 결핍된 모성 때문이며, 이런 동백이 성장하는 계기는 동백의 아들 필구에 대한 동백의 모성이다.
모성과 모성 사이에서 엄마들은 성장한다.

끝간 데 모를 모성에 아이들을 다치게 하고 엄마도 다친다. 자식이 벼슬이라 엄마는 을이고 자식은 갑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두 회차에서는 엄마와 아이들이 서로 상처를 주는 갑을 관계를 끊고, 서로 꽃이 필 것 같다.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했다는 까멜리에 간판처럼.

이 드라마의 엄마들은 착한 엄마 나쁜 엄마의 평면적인 구도가 아니어서 좋았다.

어린 동백을 버린 나쁜 엄마여야 하는 동백의 엄마. 과거 동백과 동백 엄마가 순댓국 식당에 앉아 있던 장면을 보면 동백 엄마는 입술이 부르터 있는 궁핍한 신세로 나온다. 폭력 남편으로부터 도망이라도 친 것 같은 모습이다. 공중화장실에서 배고프다는 아이에게 밥을 못 줘 우는 장면을 보면 두 모자가 일정한 거처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 같다.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딸을 위해서 엄마는 나쁜 선택을 한다.
딸아이 밥은 굶기지 않겠거니 싶어 평소 사람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던 원장이 있는 고아원 에 아이를 버리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아이와 헤어지는 것이다. 물론 고아 딱지로 유년과 성장기를 보낸 동백이 받은 상처는 깊이 동백이를 좀먹었다.

아들이 이혼하는 법원까지 따라오는 규태 엄마는 어떠한가. 땅부자에 옹산군 유지인 남편이 외도와 도박을 하는 통에 규태 엄마는 아들만 보며 동동거리고 살았다. 변호사 며느리가 아들 규태의 기를 죽일까봐 며느리를 공격하고 망신을 준다. 그러면서 철없는 아들 규태의 뒤치다꺼리만 하고 산다. 이혼하는 아들의 법원까지 엄마가 가야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이다. 우리 규태가 관공서에 가서 실수라도 할까봐.. 변호사 며느리에게 속아 집이며 땅이며 다 줄까봐... 규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런 아들을 채근하며 혼내는 규태 엄마의 인생도 고달프다.

또 다른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가 왜 생각을 해. 엄마가 다 처리할테니 넌 생각하지 마. 엄마가 다 해줄게 엄마가 다 할게” 딸인 박상미는 인스타의 좋아요가 없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결혼도 엄마가, 이혼도 엄마가, 재혼도 엄마가 알아서 해 준다. 박상미라는 이름 대신 제시카로 살고 싶은 딸은 자신의 젖먹이 딸을 돌보지도 않는다. 독립된 개인이 되기 위한 첫 걸음마도 못 떼어 ‘강종렬와이프’라는 트로피를 위해서만 살 뿐이다.

극 중 착한 엄마로 대표되는 용식의 어머니 백두 여사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편이 죽은 후 태어난 막내 유복자인 용식에게 백두 여사는 끔찍하다. 경찰관이 된 아들이 수사를 하다 여차저차해 민원인 영심이네 열무를 뽑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백두는 영심이에게 전화해서 자기 아들에게 열무를 뽑게 했다며 호통치고, 아들에게 필요한 수사 단서를 주라고 한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 아느냐며. 아들 용식이 군대에서 뺨을 맞았다고 해서 닭 300마리를 튀겨 군대로 간 엄마다. 다 큰 아들에게 언제나 게장 살을 발라 주고, 오리살을 발라 밥 숟가락 위에 얹어 준다. 아들이 티없이 밝게만 자랄 수 있다면, 어떤 모진 일 험한 일 더러운 일도 감수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온 것이 이 백두 여사의 자부심이고 살아낸 원동력이다. 하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아들이 자유롭게 원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도록 자신이 어떤 일도 할 수 있지만, 아들이 자유롭게 그 여자를 만나는 것은 안 된다.

재미있는 것은 동백이 역시 폐쇄된, 모순적인 모성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다. 고아로 큰 자기와 다르게 아들만큼은 그 아픔을 모르게 커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아들은 여느 8살과 다르다. 이미 다르다. 오직 엄마의 호강, 엄마만 걱정한다. 엄마 때문에 일단 코부터 선빵을 날리고 보는 싸움닭이 되었고, 엄마에게 ‘남들에게 코를 때려 선빵을 날려야 한다’고 항상 가르치는 ‘머리 아픈’ 8살이다. 엄마가 눈에 안 보이면 패닉에 빠지는, 준기 엄마의 말처럼 ‘분리불안’을 겪는 것 같다. 준기가 어릴 때 했던 행동을 동백이 아들은 아직도 하는 중이다. 동백이는 자신과 다르게 아들을 키우려고 기를 쓰지만, 항상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다. 그래서 동백의 아들은, 늘 미안한 엄마를 두어서, 8살답게 엄마한테 생떼도 쓰고 엄마 탓을 하고 싶어도 눈치를 본다. 남들 가는 전지훈련을 가고 싶어도 절대 말하지 않고 마음을 쓴다.

고아인 동백이 향미와 달리 죄 안 짓고 아들 잘 키우며 살아 왔듯이 엄마 없이도 아이들은 행복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 엄마가 보살펴 줘야 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자유롭게 선택을 하는 주체적인 존재가 될 때도 있다. 모든 '때'에 엄마가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보호가 공리적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이 드라마의 엄마들은 보험금 몇 억, 닭300마리, 연봉 12억 남편, 옹산 배밭 등 수치화된 공리로 아이들을 보살피기만 한다.
어른이 되어야 할 아이들이 엄마의 이 공리에 갇혀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 성장을 하지 못한다. 마음과 사랑이라는 것은 공리와 다르다. 공리주의자들은 우리의 심정, 느낌, 마음을 ‘만족’과 동일하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도 않을뿐더러 부모의 사랑은 더욱 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엄마가 처음이니까 보살펴 주지 않아도 될 때, 주체적인 개인이 될 때를 몰라 당황하고 실패한다. 이 드라마는 그런 실수를 보여줘서 우리를 울린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런 엄마를 다 이해하니까. 닭 300마리를 튀겨 온 엄마의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다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한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을 알아서 엄마를 더 기쁘게 하고 싶어서 엄마를 이해한다. 자영의 말대로 ‘악순환’이다.

옹산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곳이다. 준기 엄마의 말처럼, "동백이 니가 필구를 나한테 몇 시간 맡기기를 해야 나도 우리 준기를 니한테 맡기고 계모임을 갈 것이 아니냐. 니가 내외를 하지 말아라. 똥까지 닦아"주는 우리가 옹산이다. 강종렬의 기억처럼 옹산은 모두 다 식구인 곳이다. 밥 때가 되어 어느 집으로 가도 숟가락 하나를 더 올리면 끝인 공동체인 곳이다.

물론, 레트로토피아만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옹산이야 말로 애 하나 데리고 열심히 살아 보려는 동백에게 구설수와 편견으로 동백을 괴롭게 한 곳이다. 특히 8살 애가 딸린 미혼모인 동백이 옹산 회장님인 백두의 막내 아들과 '연애'를 하게 되는 사건으로, 동백은 옹산을 떠나기로 한다. 백두는 언제나 동백이 편이었고, 동백과 '베프'였다. 남편 없이 장사하며 아이를 키우던 자신의 젊은 날과 동백의 삶이 비슷해서 더 잘해주었던 것 같다. 동백에게 '결혼'을 종용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막내 아들과는 안 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동백이 떠난다고 하자 옹산 엄마들은 마음이 불편하다. 가지 않았으면 한다. 식구가 되어 잘 해줄 날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헤어짐은 불시에 찾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동백에게 위험이 닥치자 모두 힘을 모아 동백을 지킨다. 동백이 옹산 엄마들을 변화게 한 거다. 이상적인 유토피아인 옹산을 변함 없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가 아니었던 곳이 유토피아가 되는 곳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드라마여서 설득력이 있었다. 동백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백두만이 동백 편이었지만, 지금은 백두만이 동백을 거부하고 있다. 말로는 다정해도 김치 한 포기 절대 나누지 않는 곳과, 구박하면서도 김치 가져가라고 썽을 내는 곳. 그곳과 저곳 사이에서 엄마들은 동백이를 통해서 변하고 있었다.

엄마가 미혼모여서, 엄마가 과부여서, 엄마가 돈이 없어서, 엄마가 힘이 없어서, 엄마가 아들이 아니라 딸인 너를 낳아서, 저런 이유 이런 이유로 자식에게 늘 미안한 엄마들이 아니라, 자식 떳떳하게 키운 것으로 장하다고 칭찬 받아야 할 엄마들이 있는 곳이 옹산이다. 그래서 향미에게도 이곳은 엄마가 많은 곳이고, 동백이에게도 엄마가 많은 곳이다. 백두 여사는 용식이를 혼자 키웠다고 자부심을 느끼지만, 옹산 엄마들은 죄다 자기가 용식이를 업어 키웠다고 한다. 365일 조석으로 얼굴을 마주대고 있는 골목이라 식구인 거다. 그런 옹산에서 큰 용식이는 '까불이'를 잡는다. 그래서 옹산 엄마들은 딸인 동백이를 지키려고 옹벤저스가 된다. 이렇게 옹산에서 자란 아이들은 '까불면 죽는다'고 하는 인생의 큰 고난과 위협을 이겨낼 거고, 옹산 같은 공동체가 되어 주는 것이 가족이고 식구이고 엄마인 것 같다.

너무 괴롭지 않게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를 위로해주는 드라마고 엄마를 더 사랑하게 하는 드라마다. 많은 비중을 코미디로 채웠지만 눈물 쑥 빠질 준비를 하고 봐야 하는 드라마인데,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이런 드라마는 정말 세상에 없다. 우리나라 드라마만 할 수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은 또 하나의 레트로피아, 유사 가족이 '법적 결혼'을 통해 진정으로 가족이 되는 보수로의 회귀가 아닌가 싶어 도끼눈을 뜨고 본 드라마이다.
지루하고 늘어진다는 평도 있었지만, 작가가 뚝심있게 옹산 엄마들의 성장기를 잘 설득해 주어서 정말 즐겁게 울면서 본 드라마이다. 착한 드라마를 보면 나도 착해지는 것 같아 한결 월요일 출근이 가볍다. 율도국 옆에 옹산도 있다고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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