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충청남도 태안이다.
결혼하고 시댁에 갔는데, 그때가 3월 주꾸미철이어서 아가씨와 어머님이 주꾸미 샤브샤브를 해 주셨다.
맑은 채소 육수에 해산물 샤브샤브를 먹는 기분으로 주꾸미를 먹었었다.
그때는 어려운 자리이기도 해서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잘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샤브샤브 마지막에 풀어 넣어 먹은 칼국수가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해산물을 워낙 좋아했지만 그 당시에 주꾸미 머리는 너무 커서 잘 넘기기 어려웠고, 주꾸미 데친 것을 간장에만 찍어 먹으려니 무슨 맛인지도 잘 몰랐다.
또 배가 너무 불러서 칼국수면을 몇 가닥 먹지도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먹물이 터져 육수와 한 데 섞인 그 국물 맛이 그리웠다.
그렇게 1년 동안 샤브샤브 국물만 생각하면서 보냈다. :-)
얼마 전에 친정이 이사를 해서 찾아뵌다고 하니, 어머님이 대구갈 때 들고가라고 주꾸미 생물을 거의 10kg이나 보내셨다.
갓 주꾸미를 잡고 들어온 배에서 바로 구입해서 보내신 택배를 받아 들고 대구로 갔다.
받을 때는 몰랐는데 대구에 가서 짐을 푸니 주꾸미가 너무 많은 것이다. 친정에 간다고 하니 바리바리 싸 주시려고 그러셨던 것 같다.
아침에 잡아온 것을 경매장도 가기 전에 받아서 가져왔으니 얼마나 싱싱한지...
천일염이나 밀가루로 빨판을 북북 문질러 씻어야 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정말 보들보들, 탱탱하고, 눈알이 새까만 것이 정말 신선했다.
씻은 주꾸미를 소분해서 친정 냉장고에 바로 얼리고, 그것을 서울로 들고 왔다.
그렇게 냉동실에 한 3주 있었나보다.
남편은 "냉동한 주꾸미는 샤브샤브로 못 먹는다."고 하지... 나는 1년을 주꾸미 샤브샤브 타령을 하며 살았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샤브샤브를 해 보기로 했다!
큰 냄비에 대파 3개를 넣고, 튼실한 감자 한 알, 다시마, 멸치 듬뿍, 말린 표고 3개를 넣고 한번 우르르 끓였다.
그리고 출근하느라 그 냄비를 그대로 한 나절 놔두었다.
그랬더니 육수 맛이 끝내줬다.
육수 맛의 비결은 "감자 한 알!"이다. 이건 진리다 진리.
그것을 샤브샤브 전골 냄비에 담아, 가츠오부시 간장을 밥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 넣었다.
냉동실에서 꺼낸 주꾸미를 찬 물에 담궈서 20분 정도 지나니 다 녹았다.
물은 자주자주 갈아줬다.
해동한 주꾸미를 끓는 육수에 넣어 다리와 머리를 잘랐다.
머리는 익는 데 좀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다리? 몸통은 살짝 익혀야 한다.
정말 저 흰 살이 맛있었다. 냉동한 것이라도 생물 못지 않은 맛이었다.
오히려 약간 숙성(?)한 느낌이 들어서 훨씬 감칠맛이 돌고 맛있었다.
비리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이런 샤브샤브를 비린내 때문에 즐기지 않는 남편도 엄청 먹었다.
아... 저 자태! 굽신굽신
살이 어찌나 연하고 달던지... 제철 주꾸미는 낙지와 문어 뺨 때리고도 남는다.
역시나 나의 참깨소스.
(큐피 참깨 소스 혹은 큐피 참깨 드레싱이다. 이 소스는 샤브샤브에 최적화된 소스라고 생각한다. 소고기 샤브샤브에 제일 어울린다.)
그리고 간장 소스도 만들었다. (진간장 한 숟가락에 샤브샤브 국물 세 숟가락, 그리고 와사비!)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흰 색이 뭉개졌는데,
주꾸미 대가리에 알이 가득찼다. 저 쌀알같은 알은 크리미한 맛이 난다.
정말 맛있었다 ㅠㅠ....
마지막으로 내가 1년을 기다린 대망의 면식!
사실 칼국수면을 넣으면 밀가루때문에 국물이 졸아든다. 그래서 짜다.
라면 사리를 넣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집에 라면이 짜파게티 뿐이어서 걱정하면서 넣었는데, 짜파게티 면이 꽤 맛있다.
굵기도 되려 적절한 굵기였다. 굵어서 걱정했는데...
주꾸미 먹물이 터져 국물맛은 정말 천하일품이었다 ㅠㅠ
깊고 풍부한 맛...
(자화자찬)
같이한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 "산테로, 피노 샤도네이 스푸만테" (이탈리아 와인, 16,600원에 구입)
단 와인은 싫어하고 오히려 드라이할수록 더 좋아하는 취향이다.
코스트코에서 시식 행사를 하길래 어떤 잔을 하나 들고 먹었는데 너무 달아서 "이것은 너무 달다"고 했더니,
소믈리에가 골라준 것.
전문가는 전문가구나 싶었다.
탄산과 적당한 알콜기와 포도향, 와인 맛이 청량하고 드라이해서
해산물과 같이 먹었는데도 비린 맛이 전혀 없다.
가볍다.
와인이 무거워서 음식맛을 해치지도 않는다.
(무거운 와인은 그래서 같은 찐함이 있는 치즈를 곁들여야 좋다.)
신의 물방울에 '가격대비 좋은 와인'으로 추천한다고 등장했었단다.
일본 판매 1위라고 하더라.
이건 얼마 전에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무려 5만원짜리 화이트와인. 라 크레마.
캘리포니아 소노마 와인이다.
그 날 괜히 와인병 들고 취한 '캘리포니아 여자' 흉내를 내고 싶어서 큰 맘 먹고 구입했었다.
(캘리포니아 여자는 또 뭐람)
회사에서 너무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냥 선술집에서 취하고 싶진 않았달까...
울적한 기분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것이 아닌, 괜스레 지친 인생이 울적해 보여서...
아무튼.. 그래서 구입했다.
이 와인은 과일향이 '대단하다.' 오렌지향, 레몬향이 물씬나는 포도주랄까.
드라이함의 끝이다.
그리고 '진하다'
꿀의 농도처럼 진한 느낌이 탁 든다. 라 크레마에 대해 들은 것도 없는데, 울적한 날 끈끈하고 날렵한 와인을 고르다니!
(난 평소에 소주, 위스키, 칵테일을 절대 안 마시고, 맥주를 마시는 입맛이다.)
어쨋거나 3배 가격인 라 크레마와 비교하면, 피노 샤도네이 산테로는 탁월하다.
전식(에피타이저)에 어울리고, 여름 낮의 테라스에서 마실만한 맛이다. 기분 좋은 햇볕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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