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며칠 전 나는 택배 아저씨 전화에 "엽세여~ " 하고 동네 모자란 형마냥 전화를 받고,
몇 분 후 눈꼽을 떼면서 받아든 박스.
'이게 뭐지' 하면서 열었다가 나는 그야말로 떡실신.
헉
무려 그 귀하고 귀하다는 특급 한우가 3.5kg (나 또 촌스럽게 흥분해서 막 사진도 찍었다. 어쩐지 찍어둬야 할 것 같아서 ㅠ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실 한 개 한 개씩 증명사진 찍듯이.. 그렇게도 찍었다. 흙흙 )
일단 미국 달라스 쪽을 향해 정화수 떠놓고 삼배를 한 후, 덜덜덜 떨면서 어쩔줄을 몰라 그 자리에서 뱅글 뱅글 돌았다. 좁은 집 안을 몇 번이나 우왕좌왕, 엎치락뒤치락 팔딱 팔딱 뛰며 뭘 할지 몰라 왔다갔다 했다.
그 와 중에도 나는 내가 정신없는 동안 저 고기들이 신선도를 잃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조마조마해지고 머리는 뒤죽박죽 심장은 쿵쿵 뛰고.
일단 내가 가장 많이 다뤄봤고 쓰임새가 확실한 국거리용을 뜯어 1인분 씩 소분해서 냉동실로 직행. (1인분 정도 씩 썰면서도 손이 얼마나 떨리는지 ^^;;)
그리고 불고기감은 양념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 놔야 불고기나 전골을 해 먹을 수 있으니까 좀 있다 손질하기로 결정하고 냉장실로 고고.
나머지 산적용, 장조림용, 구이용은 당장 식단 견적이 머리에 빠릿빠릿 안 서 냉장실에 넣었다가 냉동실에 넣었다가 혼자서 한 1분 바보짓을 했다.
산적은 엄두가 안 나서 나중에 국거리나 불고기감으로 해 먹자 싶어 냉동. 구이용은 저녁에 먹으려고 냉장.
마지막으로 장조림용도 '에라 몰라 일단 얼리자' 라는 심정으로 냉동실에 넣어 두려고 했는데 그런데 이게 너무 아까운 거다. 냉장인데 냉동으로 만들어 질을 떨어트리려니... (으이고 아줌마 다 됐다. ㅜ.ㅜ) 이렇게 선물을 보내준 것도 고마워 죽겠고, 이런걸 받아 봤어야 식단별로 소분도 하고 제대로 보관도 해서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잘 먹고 또 감사해 할텐데 뭐 생전 해 봤어야지...
고기에 간장이 들어가면 바로 질겨진단다. 그런 걸 몰랐다. 그거 팁으로 받아서 한 나절 장조림 700g, 메추리알 3팩(소 국물이 아까워서 장조림 양도 늘리고, 또 난 간장조림 달걀을 좋아하니까 흠흠), 냉동실에 있는 은행 좀 넣고 장조림에 든 통마늘이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통마늘도 듬뿍 넣어서 만들었다. 아침부터 세수도 안하고 눈꼽만 뗀 채로 메추리알 사러 또 동네 모자란 애 마냥 수퍼 다녀왔다.
장조림 하면서 또 냉장실에 있는 불고기감의 선도가 점점 떨어질까봐 물도 한 번 안 먹고 만들었음;; (남이 귀하게 보내준 선물이고 그러니까 더 신경이 가고 그러더라. 내가 산 건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말거나 좀 너그러운데. 남이 준 걸 내 불찰로 맛없게 먹거나, 실패하면 너무 미안해서.. 장조림 만들면서도 덜덜 거리면서 만들었다. 큭.. )
눈 한 번 깜빡 안하고 물도 마시면 시간 흐를새라 이렇게 하고 나니 거의 탈진 상태. 큭 >.<
소고기에 이렇게 손 떨어하고, 맛 없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고... 그런데도 힘든지 몰랐다. 보내준 사람이 너무 고마워서 이거 다 해서 장조림이며 불고기며 국거리로 한 미역국, 무국, 얼큰한 국 등등 모두 다 해서 같이 먹고 싶었다. 흑흑. 평생 잊지 않고 고마워 할 거다.
다행히 장조림이며 불고기 구이용 로스 모두 맛있었다. 그리고 들깨 미역국을 끓였는데 고기를 씹어도 전혀 비리지도 않고 진짜 고소했다. 먹을 때 마다 마음이 뻐근하다.
불고기를 냉동실에서 꺼내 전골 만든 것. 첨엔 버섯도 이쁘게 두르고 보기 좋았는데 휘휘 젓다 보니;;; 고기가 붉은 건 냉동했던 것을 바로 넣어서 그렇다. 알배기 배추가 들어가서 달작지근하고 정말 맛있었다. 불고기 양념이 잘 되서 고추가루, 멸치다시물만 붓고 따로 양념을 하지 않았는데도 굳!
불고기. 아껴서 먹고 있다. 이제 2번 먹을 것 밖에 남지 않았다. 흑흑 불고기 양념해서 재일 때 마지막에 참기름 대신 고추기름 둘러서 만들었는데 깔끔한 게 좋았음.
소고기가 좀 질린다. 서민들이나 평민들은 뭘 먹는지 궁금해 지는 때다. (-.- ㅋㅋ)
결대로 자르라는 소고기... 아무리 뒤집어 보고 엎어 봐도 결대로 찢기지도 않고 자르기도 수월찮고 그냥 칼로 자름. 밥에 이 놈만 있어도 금세 뚝딱. 너무 짜지 않게 하고 표고가 들어가서 감칠맛이 최고~! 내 입으로 말하면 부끄럽지만 좀 맛있음. 케케케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