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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떠나라>고 한다.
마치 DSRL을 들고 "파리~ 트리뷴"이라고 소리라도 치지 않으면,
혹은 혼자 인도라거나 남아메리카라도 간 적이 없는 사람은
그의 인생에 대해 성찰도 하지 않고 커피도 한 잔 즐기줄 모르는 '뒤쳐진' 사람이 되버린 기분이다.
지하철의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지쳐있기만 하고 나 역시 저런 피로한 걸음의 하나인 것 같다.
불현듯 어디 멋진 계기라도 마련해 보고 싶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서
어느 순간 '여행'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볼까치면 여행에 대한 말들이 마치 우박처럼 쏟아진다.
블로그 마다, 미니홈피들 마다 그리고 서점의 진열대 마다 끊임없이 '훌쩍 떠나는 자유'에 대해 재잘거린다.

그래서 마치 일상을 떠나 당도한 그 땅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가듯 여행을 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허무하고 위험함을 떠나 일단 비상식적인 행위가 있을까.
무엇보다 자연스럽지 않다.

이는 나 자신의 기초와 외부 세계와의 균형점을 일탈해 버리는 일이다.
처음가는 여행지에서 남들이 했던 것 만큼,
아니 남들보다 더 많이 행운을 얻고 더 많은 것을 섭렵할 까닭이란 단 하나도 없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여행은 나에게 "괜찮아, 지금이 아니라도 괜찮아."라고 기다려주고
"괜찮다. 더 잘하지 않아도 지금 모습으로 충분해"라고 나를 보듬어주고,
"너의 인생에서 무의미한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며 나에게 용기를 주는 시간이다.

 




경쟁하듯 세 번 다녀오고, 네 번 다녀왔다고해서 파리를 얻을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행과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달린 일이지,
돈과 시간으로 비행기 티켓과 호텔 체크인을 살 수 있는 유의 항목이 아니다.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목표들에 점점 가까워지는 자신을 발견한단다.
기준 목표를 정해두면 어느새 그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나의 한계를 넘어서 볼 상황들에 도전하면서 삶을 한 뼘씩 더 성장시키는 것.
그 성장을 즐겨보는 것. 노는 여행!

 



 


일상 생활에서 대로에 뛰어든다거나, 직장 상사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붓는 도전으로
내 인생의 한계치를 시험해 본다면 매우 곤란해지겠지만
'어디 한 번 낯선 곳으로 여행이나 한 번 해 볼까' 하는 정도는 그 자체로 이미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나의 세계와 타인이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래서,  여행이라는 방편을 통해 자신을를  온전히 홀로 놔 두면서
인생의 예행 연습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냄비 속의 물이 서서히 끓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죽게되는 개구리처럼
'나 역시도 같은 상황에 처한것은 아닐까…' 하며,
문득 가슴 한 쪽이 지릿하면서 목구멍에 울음같은 것을 느낄 때,
위축된 내가  거대한 인생에 저항할 힘을 키우도록
세계는 여행이라는 이벤트를 준비해 두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수필집 <여행의 기술>의 말미에는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이 감명을 받았노라며 인용한 문단이 있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내 방을 여행했다.'는 대목이었는데
나는 자기의 옷장을 여행하고,
밤새 자기의 서재를 여행하는 중년의 신사를 상상하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 상처입은 내 자신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 설겆이를 하면서 문득 내다 본 안양천에서 쑥을 캐러 나온 사람들이 보여
    '쑥이나 캐러갈까'하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할 때,
… 일 년의 노동에 2박 3일 주어지는 피서철, 남들 다 가는 해수욕장으로 꾸역구역 떠나는 것도
… 유명 와인 산지를 찾아 호기있게 한 달씩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도 모두 여행이다.
    그것도 매우 소중한 여행이다.




20대의 여행이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이 지구의 x축과 y축 위에서 위치를 찾아가는 괴로운 열정이라면
30대의 여행은 그 딴 x축과 y축 따위라는 배짱을 부려가는, 어쩌면 외로운 체념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여행은 '노는 것, 즐거운 것'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경쟁과 열등감에서 떠날 줄 아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인 셈이고.

그러니 말이다 우리 초조해하지 말자. 조바심내지도 말고 더 사랑하자.
드라마 대사도 그러잖아.
맛있는 걸 찾는 것도- 좋은 풍경을 보고자 하는 것도- 내 자신을 지키는 것도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에게로 돌아와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지.
결국 어느 순간 단순한 이유로 시작해서,
가볍게 떠나고 최소한의 것들을 담아오려고 하는 것이 가장 크게 얻는 것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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