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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가계부를 결산하면 '외식' 카테고리에서 가장 큰 덩이를 차지하는 서초동 이자카야 윤스 와가마마.

그래도 윤스 와가마마를 다니면서 돈이 아깝다고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속이 허하거나, 괜히 위로받고 싶을 때,

한 달 동안 열심히 회사 다녀서 고생했다고 남편과 내가 서로 칭찬하고 기운 북돋아 주고 싶을 때

윤스 와가마마를 간다.

그렇게 갔을 때 늘 마음이 꽉 차서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괜히 취해서 남편하고 쓸 데 없는 논쟁을 벌이느라 계산할 때 멋적고 부끄러운 적도 있었지만

동네의 작은 가게가 주는 좋은 음식의 기운에 늘 힘을 얻었었다.

진짜로

 

 

 

 

윤스 와가마마가 3년이 되었나보다. 이제는 명품 꼬치 구이가 메뉴에서 사라졌다.

좋아하던 나가사키 짬뽕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 '요세나베'라는 이름의 음식이 적혀 있더라.

그래서 주문해 봤다.

 

요세나베는 우리 말로 '모둠냄비' 요리인데, 사전을 찾아보니

<고기·생선·야채 따위를 잘게 썰어 많은 국물에 넣어 끓이면서 먹는 요리>라고 한다.

 

 

이렇게 한가득 푸짐하고 정겨운 음식이 나왔다.

 

표고 버섯도 예쁘고, 큐브 모양의 두부를 한 면만 그슬린 것도 여기 셰프가 정성들여 주는 음식이란 생각이 들고..

 

새우는 금세 건져 먹으란다.

서빙하시는 분이 과묵하신 편인데, 꼭 필요한 말만 하신다.

새우를 금세 건져 먹으라고 한다면

그 말을 듣는 게 제일 현명한 행동이다.

 

 

 

 

윤스 와가마마에 가면 사진을 찍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다가도(부끄러워서;;)

이런 건 기억해 두고 싶어서 찍게 된다.

이상하게 윤스에서 먹은 것들은 그 날의 마음이나 기억, 남편과 서로 칭찬해주고 위로해주고 한 것들과 같이 떠오른다.

 

이제 사장님은 남부 터미널 근처에 스시 식당을 하실려나보다.

 

처음엔 그것도 모르고.. 남편이 "이제 윤스 와가마마 가게 안 하나봐. 새로운 스시집 같은 게 들어오나봐!" 라고 뛰어들어오며 말했었다.

 

정말 우리 둘이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사장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전화로 물어볼까도 생각했었다.

 

우리 부부에게 기쁨을 주던 안식처 같은 식당이었는데...

귀찮게도 안 하고, 호객 행위도 안 하고, 일식집 처음 왔다고 후진 것 준 적도 없고...

(일식은 단골에게 후하지만, 초짜들에게 야박하잖아)

 

아무튼 무진장 둘이서 속상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윤스 와가마마에 다시 갔다.

 

 

 

 

오너 셰프는 통 안 보이시더니, 이 날도 안 계셨다.

정말 가버린건가..

 

처음 보는 젊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한다.

 

아무튼 다시 요세나베를 주문.

 

뭐얏!! 뭔가 달라

흐트러져 있어!!

표고버섯이 잘 보이지도 않다니!!

아아 미묘하게 뭔가 흐트러져 있고 다르다!!!!!!!!!!!!!!!!!!!!

아아!!!

윤스 와가마마는 이제 정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 건가!!

남편하고 별의 별 추측을 다하면서 ㅠㅠ 속상해 하다가...

 

갈 때쯤 되서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스시집을 하시게 된 거란다.

윤스 와가마마도 문 닫는 게 아니란다.

 

으으 ... 다행이다.

 

.

 

12월 중에 여시려나.. 퇴근 길에 지나가 봐야겠다.

 

 

 

이건 소스.

 

 

우리가 서초구에 오래 살았지만 서초동에 정 붙이게 된 것은, 윤스 와가마마의 공로가 크다.

우즈베키스탄 현대 록 음악을 틀어 놓던 청년 둘이서 하던 생선 가게나

원하는 헤어 스타일을 물어보시고는 대답과 무관하게 언제나 제멋대로 머리를 해 주시는 미용실 아주머니 두 분의 공로도 크지만

동네에 편안하게 가서 마음을 툭 놓고 힘을 받아 오던 윤스 와가마마의 공이 크다.

모쪼록 음식의 마지막까지 늘 예리하고 정성이 가득하던, 그래서 정말 스마트한 음식,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만들어 주던 음식만큼은

여전했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그런 요리 한 그릇에 감동을 받아서 우리 부부는 기운을 많이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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