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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계단을 내려와서 직진을 하면 멀찌감치 계산성당이 보인다.
1919년 3월 8일 오수 2시경에 그 90계단 위 동산 언덕의 솔밭에서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계성학교(주요 근대 건축물이 세 채가 여전히 큰 규모로 남아있고, 또 사용되고 있다.),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보 학생들과 남산교회, 서문교회 교인들이 큰 장(서문시장) 안 강씨네 소금집 앞으로 접근해서 모였고. 동산 솔밭에 시위대가 모여 이만집 목사가 소 달구지 위에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며 약전 골목(약령시) 등으로 1천 여명이 걸었다고 한다.
계산성당은 사적 290호로 영남 최초의 고딕 양식 건축이고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십자가를 진 예수님 상을 지나 입구를 지나면 건물이 드러난다. 지금도 견고하게 서 있고, 안에는 기도를 드리는 분들이 모여서 미사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건물 오른쪽을 따라 걷다보면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있고 그 곳에 '빼앗길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의 고택과 독립운동가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보존되어 있다. 난 너무 배가 고파서 담장 너머로 힐끔 보고는 약령시로 갔지만(..)
잠시 앉아 이것 저것 기도를 드렸다.
제일교회 왼쪽으로 내가 내려온 길이다.
독립운동의 자금을 대기도 했던 약전 골목. 일명 약령시.
약재상들이 죽 늘어서 있어서 거리 전체에 한약냄새가 난다. 여기에 화교 거리도 있고 더 나가면 떡전골목이라고 이바지 음식과 낙원상가처럼 떡집들이 늘어서 있고, 염매 시장이 있다. 대구의 오래된 시장이다.
시간이 8시가 다 되어갔던가 그래서 영업을 종료하고 조용한 거리. 약전골목 한 중간에서 찍어봤다.
화교거리를 알리는 건물.
제일교회
유형문화제 제 30호로 지금은 제일교회 교육관으로 쓰이고 있다.
대구 지역에서는 최초로 종탑을 올린 건물이라고 한다.
1933년에 모금과 성금으로 건립하고 2년 후에 종탑을 올렸단다.
역시 너무 늦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건물 오른편의 작은 골목을 들어가면 바로 약령시 박물관이 있다. 꽤 예쁘게 단장해 둔 곳이다.
건물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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