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모테산도에서 시부야로 걸었다. 걸으면서 번화가를 구경하는 것은 무척 오래간 만이어서 우리 둘은 들떴다. 기분이 좋아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런데 막상 시부야에 도착하자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뭐랄까... 대체 여기서 뭘 해야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명동 뒷골목의 빼곡한 가게를 보면서 받는 스트레스같은 것이었다. 이런 번화가는 나랑 잘 맞지 않았다. 쇼핑을 하러 올 때 빼고.

 

 

 

 

오모테산도에서 신주쿠로 걷는 길.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하라주쿠이다.

재미삼아 길구경을 하며 걸었는데, 15분 남짓 걸렸다.

금세 신주쿠가 나왔다.

길을 걷는데, 한 무리의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캐논이나 니콘 카메라를 들고 길 가에 붙어 자동차를 찍고 계셨다.

남편이 그러는데 사진 동호회에서  '패닝' 연습을 하는 거라고 했다.

이런 작은 재미도 여행길이라 그런지 신나게 느껴졌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들른 맨즈 109에서 남편은 스카프를 하나 사서 둘렀다. 3000엔인데 50%할인을 해서 1500엔에 구입했다.

오모테산도 쇼핑몰에서 본 해골모양 스카프가 50만원이었는데, 이건 2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도 목에 둘렀을 때 따듯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스카프 매는 법을 몰라 쩔쩔매고 있어서, 상점 직원이 도와주었다.

간단한 스카프 매는 법인데도 도움을 받으니 훨씬 모양이 좋아졌다. 남편이 자기 스카프 맨 모습을 보고 싶어해서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다.

 

 

 

돈키호테라는 잡화점을 찾다가 실패하고 우리는 휴족시간과 동전파스, 아이봉을 사서 우에노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무지 우에노역에 갈 수 있는 긴자선의 입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할머니들을 만나 물어물어 노란색 긴자선을 탔다. 이때 들었던 안도감이란.

 

 

 

 

 

 

 

 

 

 

 

 

 

신주쿠는 정말 큰 번화가였다.

뒷 골목은 '명동'의 열 배쯤 되는 빽빽함이 가득했다.

 

 

 

 

 

 

우에노 공원 안에 위치한 국립서양미술관의 전시들을 여유롭게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우에노역에 막상 내렸는데, 이 공원이 워낙 방대한 곳이라 미술관만 여러 개 위치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미술관 쪽 입구를 찾아 쫓기는 마음으로 도착하였다. 다행히 역 근처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우에노역은 서울 1호선 어딘가와 비슷했다.

 

 

 

 

 

 

 

 

 

 

 

 

 

 

 

공원 안에 들어오니 편안했다. 규모가 엄청 큰 공원이었다.

 

 

 

 

 

 

 

 

 

 

 

미술관 앞 뜰에는 로뎅의 조각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남편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냅다 남편의 손을 끌고 이건 전시 나와서 여유롭게 볼 수 있어.”라고 말하고 미술관 입구로 데려갔다.

라파엘로 특별전 입장권을 사는데 말도 헛나오고, 일본어로 말하는 접수원의 말을 듣고 나니 더 당황하고... 아무튼 손짓을 해가며 표를 사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난 문명인이라구...’

라파엘로 특별전은 약 40분 정도 관람했는데 정말 명불허전이었다. 정말 예뻤다. 역시 그림은 실제로 봐야 그 진가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남은 40분 정도는 미술관의 보유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모네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르느와르도 한 두 점 있었던 것 같고, 루벤스도 한 점 있었다. 14세기 종교화부터 꾸르베, 피카소, 폴락까지 구색은 다 갖춘 전시였다. 꽤 신경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알찬 전시다. 특히 내가 아껴보는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그림이 한 점 있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그림이 박힌 냉장고 자석을 하나 사 왔다.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전시를 모두 보았다. 이젠 이렇게 서두르지 말아야지. 시부야에서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낸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도 그 유명한 시부야의 다섯 횡단보도는 구경했네.

 

 

 

 

 

 

 

 

 

 

 

 

 

 

 

 

 

 

 

 

 

 

 

 

 

 

 

 

 

 

 

 

 

 

 

 

 

 

 

 

 

 

미술관 구성이 알차다. 서양 미술사를 쭉 공부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오전에 들른 '네즈 미술관'이 '비밀의 정원'이라면, 이곳은 '모두를 위한 보석함'이다.

 

 

 

 

 

 

 

 

라파엘로의 그림을 실제로 보니, 밑줄 그으며 공부했던 것이 한 번에 체득되는 기분이다.

성스러운 마리아를 인간처럼, 예수를 아기처럼 그린 '르네상스'의 또 다른 축이다.

 

 

 

 

 

 

 

 

 

 

 

전시를 마치고 나왔는데 날씨가 부쩍 추워져서 손이며 귀가 시렸다. 입술이 덜덜 떨렸다. 봄 옷을 입고 온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우에노역 근처에 오래된 장어덮밥 집이 있다고 해서, 검색한 후 찾아갔다. 난 너무 추워서 가게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남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정말 편했다.

식당 바로 앞까지 왔는데도 식당은 보이지 않고 너무 번화가 거리인 것 같아 노파심에 경찰관에게 물었다. “~기 맥도날드 보이시죠?” “!” “그 맞은 편이예요.” “.. 고맙습니다.”

도쿄에 와서 크게 놀라고 인상적인 것이, 경찰관들이 모두 다 영어도 곧잘하고 매우 똑똑하다는 것이다. 역무원들도 그랬고, 심지어 빌딩 경비원들도 그런 것 같았다. 일본은 제복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여러 경찰관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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