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검사를 한 결과 그의 지능은 대단히 뛰어났다. 머리 회전도 빨랐고 관찰력도 뛰어났으며 논리적이었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도 간단하게 풀었다. (그러나 금방 해결되는 문제는 간단하게 풀어나갔지만 시간이 좀 걸리는 문제는 그것을 푸는 도중에 자기가 뭘 하는지 잊어버렸다.)

 

그의 기억력을 검사한 결과, 특이하게도 바로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것을 보여주어도 몇 초 후에는 벌써 잊어버리고 말았다. 때때로 희미한 기억이 남아 있을 때도 있었다. 희미한 메아리라든가 처음이 아니라는 의식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그는 나와 틱택톡을 둔 지 5분 정도 후에 조금 전에 어떤 의사와 틱택톡을 두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조금 전'이 몇 분을 말하는지 몇 개월을 말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는 잠자코 생각하면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그 의사 선생이 당신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고 대담하자 그는 쾌활한 얼굴이 되었다. 쾌활함과 싸늘한 무관심이 서로 엇갈리는 것이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나는 가슴이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있을까? 이렇게 기묘한 일이 있을까? 그의 인생이 망각의 세계에서 녹아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다시 노트에 적었다.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매일 일기를 쓰라고 권유했다. 매일 그날 있었던 일, 느낀 일, 생각한 것, 기억이 난 것들을 모두 기록해두라고 강력하게 권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권유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무엇보다도 그가 항상 일기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날마다 짧은 메모를 일기장에 착실하게 적어놓기는 했지만 바로 그 전날 자신이 쓴 것을 보고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필적이나 문체는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 전날 자신이 무엇인가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곤 했다.

 

놀라기는 했지만 관심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전날'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쓴 일기는 전혀 맥락이 없었다.

 

이 끝없는 망각, 이 가슴 아픈 자기 상실을 지미는 알았다고도 할 수 있고 몰랐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다리나 눈을 잃으면 다리가 없고 눈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달을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자신이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환자들 틈에 끼어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도대체 그가 어떤 기분으로 사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체격도 좋고 건강한데다가 일종의 동물적인 강인함과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무기력하고 활발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게다가 누구나 느끼듯이 매사에 무관심했다. 옆에서 보더라도 '어딘가 모자라는 데가 있다'고 느껴졌지만, 본인이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에는 '무관심'했다. 어느 날 나는 그의 기억이나 과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감정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기분은 어때요?"

"기분이 어떠냐니요?"

그는 내가 한 말을 반복하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기분이 좋다고도 할 수 없어요. 뭐가 뭔지를 알 수 없어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인생이 즐겁다고 생각해요?"

"모르겠는데요."

 

내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망설였다. 한 남자를 은근히 참기 어려운 절망으로 밀어넣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저주저하면서도 다시 물었다.

 

"인생이 괴롭지 않다면...... 그렇다면 인생을 어떤 식으로 느끼나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요."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은 느끼지요?"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냐고요? 별로 그렇지 않은데요. 오랫동안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의 얼굴에 끝 모를 슬픈과 체념이 드리워졌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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