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에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건적으로 빠져 든다.  그러니까 운명적인 만남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특히 첫눈에 반하는 사랑의 경우 그 대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연인의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며, 그 대상은 자신의 내적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랑의 완전한 결정화작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싹트는 것 외에)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의심>의 과정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완전하지 않을지 모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어떤 증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스탕달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우선 경탄과 환상 그리고 적어도 한 가닥의 희망이 일어나고 여기에 곧 의심이 뒤따르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후)

“우리가 깨야 할 편견은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만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은 ‘말과 마차’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로 결혼이라는 마차를 끄는 상황이다. 아마 열정적인 사랑으로 마차를 끌면 변덕스럽고, 강렬하고, 외부 환경을 돌아보지 않고 활화산같이 질주하는 말로 인해 마차는 곧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열정과 사랑을 관계의 핵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결국 환멸을 느끼거나 이혼하기 쉽다는 연구 결과는 주목해 볼 만하다.
 미네소타 대학의사회 심리학자 엘렌 버셰이드는 이 문제를 연구한 끝에 열정적인 사랑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관계가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이혼율이 증가하는 이유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낭만적인 사랑의 경험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상관 관계가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트랜드 러셀도 낭만적인 사랑을 찬양하면서도 그것이 행복하고 안정된 결혼 생활의 토대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결혼에는 환상이 개입되지 않은 애정 어린 친밀감이 필요한데, 낭만적인 사랑은 ‘신비하고 마력적인 안개’로 연인들로 하여금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이란 불꽃처럼 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결혼처럼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 시작되는 첫 부분일 뿐이다. 사람들 말대로 현실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측면만큼이나 추하고 어두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가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한 힘든 인생의 과정을 같이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떻게 힘들고 때론 고통스러운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 식는다는 건 결코 슬픔이 아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발달하고 성숙하듯이 사랑의 감정 또한 성숙의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 하면 으레 <사랑에 빠지는 것>(falling in love)만을 떠올린다.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사랑은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랑을 하는 것>(being in love)을 거쳐 <사랑에 머무는 것>(staying in love)이란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거친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틀고, 자기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서서히 맞추어 가는 것을 말한다. 부모와 친구에게 향했던 사랑은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사랑에 빠질 때는 연인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뽑아 내어 분리시킴으로써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 반해, 사랑을 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현실 세계 안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같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상태는 아직 그들의 외부 환경과 자신들을 분리시켜 놓고 둘만의 결합 속에 있는 단계다.
 반면 ‘사랑에 머무는’ 상태는 그들의 사랑하는 관계가 외부 세계와 격리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견디어 나가는 단계다. 물론 열정적인 사랑의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기도 결코 쉬운 건 아니다. 그러니까 많은 커플이 열정에서 차분한 사랑으로의 탈바꿈을 반갑게 여기고,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 속에서 휴식을 하는게 아니겠는가.
 라쉬 교수는 사랑에 머물면서 서로가 충절과 신뢰와 같은 애정으로 결합되는 것을 <차가운 세상에 있는 천국>이라 표현했다.” 

- 김혜남,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중에서

친구네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뜨뜻한 아랫목에서 놀다가 집어온 책이었는데, 좋더라.
이런 유의 제목이나 이상한 정신분석 전문의들의 산만한 노트들을 싫어했는데 한 장 한 장 새겨볼 것이 많았다.
사랑의 성숙의 세 모습들 마다 각각의 열정이 산다고 믿는다. 열정은 노력이고.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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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도 내적으로 힘들던 어린 시절을 묻고 이제 그만 남편과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아직도 자기가 포장한 자기 자신을 벗어날 수가 없어서 힘들어 하고 있다. 남편에게 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일 용기는 안 나고, 그 상태에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감싸 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울분은 계속 쌓여만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친밀해지길 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상처가 복병처럼 숨어 있는 계곡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곳에 상처 없는 무균실 같은 곳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로 도움은 안돼지만 사랑은 할 수 있다며 갈등을 회피해선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서로의 상처만 깊어질 따름이다.”

“우리의 마음속엔 저마다 지울 수 없는 한 아이가 살고 있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자라고 싶지 않은 아이. 사랑은 그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이번엔 상처 대신 사랑이 내게로 온다. ‘나 예쁘지?’ 라고 물으면 사랑하는 이에게서 ‘넌 어떻게 해도 예뻐’라는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는 행복해져서 다시 성장할 용기를 내게된다. 아무리 사랑에 치이고 데었더라도, 사람들이 다시 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그 누구에게든 사랑하는 이가 생긴다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를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재발견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사랑이 식고, 그 사랑이 떠나 버리는 것, 그래서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를 알려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 전이란 과거 어린 시절에 중요하던 사람, 즉 부모나 형제에 대한 감정, 소망, 갈등 등이 현재의 치료자에게 대치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환자는 치료자에게 따뜻한 보살핌과 성적 욕구 등을 느끼며,  때론 치료자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현상은 분석 상황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더 강렬하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모든 걸 받아 주고, 이해해 주는 치료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럴 때 치료자는 환자가 보이는 반응이 전이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그 감정에 반응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해석해 주면서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므로 전이는 많은 사랑의 시작이 되지만 때론 매우 위험한 사랑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려 들면서 자기 자신의 안전이나 건재는 자신의 통제 하에 있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두려움도 그 전이 대상에게로 옮겨지게 된다. 사랑을 통해 그가 얻는 것은 더욱더 무기력해지는 자신과 그럴수록 강렬해지는 상대방에 대한 의존 욕구 뿐이다.

 정신분석에서 환자를 분석하지 않고 사랑하려고 하면 결국 치료가 파국을 맞이하는 것처럼, 사랑에서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고 치료를 하려 든다면 그 사랑 역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누굴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같이 느끼고 기뻐하며 슬퍼하며 서로를 깊게 받아들이는 과정, 그 과정에서 연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와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몸과 마음을 다해서 깊게 사랑하라.
 상대를 향해 눈과 귀를 크게 열고 끊임없이 서로를  발견해 가며, 때론 서로를 기다려 주고, 상대와 자신의 경계를 지켜 준다면, 굳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많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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