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월남쌈이 너무 먹고 싶어서 베트남 식당에 갔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냥 국수만 먹고 말았다. 월남쌈을 즐기는 편도 아니고 내가 그 음식을 먹어봤는지조차 가물가물할 만큼 관심이 없던 일이었는데 그 날 따라 문득 그 쌈을 입 속에 넣고 신선한 즙을 쪽쪽 빨아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이었다. 양도 많았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싸 식당을 그냥 나오고 말았지만 줄곧 월남쌈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남쌈은 98년에 대학로 포호아에서 처음 먹어 보았다.  한 어른의 자료조사를 조금 도왔는데 사례로 월남쌈을 사 주셨다. 어려운 어른 앞에서 하는 식사라 가뜩이나 긴장이 되는데, 라이스페이퍼를 온수에 적혀 쌈을 싸 먹는 것이 어찌나 고역이었는지 아직도 그 때의 느낌과 식당의 냄새가 기억이 난다. 새로운 종류의 음식을 접하느라 맛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고 무언가를 싸서 먹던 그 촉각이 남아 있다. 오히려 그 식당 벽의 색깔이라던가 더운 여름 낮의 한가했던 테이블들, 그리고 라이스 페이퍼를 몇 장 더 요청했던 일 등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그 이후로 베트남 쌀국수는 기회가 닿을 때 마다 잊지 않고 먹었다. 입맛에도 꼭 맞았고 속도 편했다.

그러면서도 월남쌈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는지 이후 단 한 번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문득 이 겨울에 '어떤 맛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월남쌈이 떠올라서 해 먹었다.

 

월남쌈엔 꼭 아보카도와 통조림 파인애플이 들어가야 한다!

파인애플은 새콤달콤 신선하고 아보카도는 가장 뒤에 고소함을 남겨서 끝맛이 감칠맛이 있다.

아보카도가 월남쌈의 절정이라더니 끝도 없이 정ㅋ벅ㅋ 했다

 

 

재료는 대충 마트에서 사고, 특별한 것들은 아시아 마트에서 주문했다.

찍어 먹을 소스는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대충 섞은 것,

까나리 액젓에 파인애플 통조림 국물 섞어서 다진마늘 넣고 만든 피쉬 소스로 했다.

 

 

누가 월남쌈 준비하기가 간편하다고 했던가.

굽고, 데치고 익혀서 채썰고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

초보자도 할 수 있긴 한데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었다.

 

새우: 끓는 물에 소금 넣고 대쳐서 후추와 가츠오부시 간장으로 밑간.

아보카도, 피망(파프리카): 썰기만 하면 됨

소고기: 쌀국수 국물로 양지를 넣고 삶았는데 건져서 간장, 후추로 밑간.

달걀지단: 흰자, 노른자 따로 채썰라는데 난 이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서 그냥 다 섞어서 부쳤다.

파인애플: 통조림

 

그 외 사전조사한 바에 따르면, 닭고기를 삶거나 굽거나 오븐에서 익혀 올릴 수도 있고

돼지고기 삼겹살도 맛있다고 한다.

양념은 하는 게 나은데 간장 양념(간장+설탕+마늘+후추 등등)이나 고추장 양념 둘 다 맛있단다.

 

오이, 양배추, 양상추, 깻잎, 상추 등등 다양한 채소 모두 맛있다니

냉장고에 있는 걸로 대충 하면 될 듯. 난 재료가 많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채소로는 피망만 했다.

하지만 파인애플과 아보카도는 반드시 들어가는 게 맛있다!

 

 

그리고 쌀국수!

아시아 마트에서 쌀국수 재료를 모아서 4인분에 12,000원에 판다.

거기에 쌀국수 특유의 향신료와 조미료가 들어간 티백 같은 걸 주는데

양지 넣고 삶은 물에 그 향신료와 조미료를 넣으면 된다.

차돌박이나 샤브샤브용 고기가 있으면 데쳐서 고명으로 올리면 더욱 더 그럴 듯한 쌀국수가 된다.

하지만 난 양지살 돈도 빠듯했기 때문에 양지로 고명을~

고수와 숙주 나물은 쌀국수 재료를 주문하면 무료로 주는데 정말 넉넉하게 오고, 무엇보다 싱싱하다.

양파는 채썰어서 식초, 소금, 설탕 섞은 물에 담궈놨다가 얹어 먹으면 된다.

 

 

쌀국수는 찬물에 1시간 이상 담궈놨다가 끓는 물에 4~5분 정도 끓이면 된다.

밑에 숙주를 듬뿍 깔았다.

숙주를 깔고 육수를 부어야 숙주 특유의 비린내가 없다고 해서 시키는대로 했다.

쌀국수 재료는 안남미로 만들어서

소화도 잘되고 칼로리도 낮다고 한다(는 말을 고마워하며 실컷 먹을 핑계로 삼았다).

 

 

육수를 붓고 나서, 채썬 파랑 고수(줄기 떼고 잎만)랑 여분의 숙주, 양파를 올리고 흡입

정말 식당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맛이었다.

식당 국수는 너무 조미료가 강했는데 집에서는 그걸 조절할 수도 있고,

그리고 국물이 더 개운하고 시원했다.

 

국수 위에 뿌려 먹는 소스도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7:3 정도로 섞으면 똑같은 소스 맛이 난다!

 

 

'식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조개 샤브샤브  (8) 2010.02.06
순두부 새우젓국  (6) 2010.01.27
동태찌개, 스파게티, 고등어조림, 등갈비 김치찌개  (2) 2009.12.24
주꾸미탕  (2) 2009.12.15
라면 끓이듯 후루룩, 뜨끈한 유부 주머니  (4) 2009.12.09

+ Recent posts